프랑스에 살면서 알게 되는 것은 “이 사람들은 말을 잘하고 또 말을 많이한다.”는 것이다.
가게 계산대에서, 우체국에서 손님과 직원이 계속 말을 하고,
회의 시간에 자기주장을 거침없이 펼치고, 식탁에서 많은 대화를 나눈다.
프랑스인을 만났을 때 대화를 이어가지 않고 침묵하는 것은 예의를 벗어난다고 할 정도로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한 문화이다.
그래서 문학, 정치, 사상과 철학이 발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말을 많이 하지 않고 꼭 필요한 말만 하는 것이 미덕인 문화에서 자라서
꼭 필요한 말만 하는데 익숙한 나 같은 사람은 이런 상황에 적응하며 살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게다가 나는 일주일 내내 한글 책을 읽고 한국말로 설교하고 한국 사람을 만난다.
그러다가 주일에 프랑스인 교우들을 만나거나 프랑스 목회자들을 만나면
말이 탁 막히고 당황하고 자연스럽고 여유롭게 그들과 대화를 이어나가지 못한다.
그러고 나면 혹시 이들이 “서운하게 생각하지는 않을까? 자기에게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하는 무거운 마음과 이들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가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된다.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에서 유행되는 표현 중의 하나가 “닥치고”라는 말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어느 신문의 주필이 “닥치고 진실”이라는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닥치고”라는 표현은 단호하면서도 거친 표현이다.
“잡다한 변명이나 이의제기나 이론을 집어 치우고”라는 말이다.
나는 이 표현이 내심 마음에 든다. 많은 설명이나 변명, 변죽을 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대화할 때도 빨리 본론으로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고,
설교 할 때도 서론에 머무는 시간을 줄이고 곧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그러다 보면 프랑스에 오래 살면서도 이 문화에 아직 동화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도 영적생활에는 이것이 좋은 면도 있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말, 이론을 줄이고,
닥치고 주님의 말씀을 듣고, 이해되지 않아도 닥치고 믿고, 순종하지 못할 이유를 찾는 대신에 닥치고 순종하기에는 딱 좋다.
나는 아무래도 이대로 살아야할 것 같다.
“내 영혼아, 닥치고 듣고, 닥치고 믿고 닥치고 순종하며 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