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독일에서 종교개혁을 시작했다면 

쟝 깔뱅(Jean Calvin)은 종교개혁을 마무리 했다. 깔뱅은 파리에서 북동쪽으로 

100km 떨어진 Noyon이라는 도시에서 1509년에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Noyon은 프랑스 혁명전까지 프랑스 북부지역 가톨릭 중심지였고 고색창연한 
대성당은 샤를마뉴(768년)와 위그카페(987년)가 대관식을 하였고 교황까지 
배출한 곳이다. 깔뱅의 아버지는 이 성당에서 재정담당관으로 일했고 그 덕에 
깔뱅은 성직록을 받아 공부하게 되었다. 


 Noyon에는 현재 깔뱅의 생가를 복원한 깔뱅 박물관(Le Musee de Calvin)이 
있다. 이 집은 16세기 말에 가톨릭 동맹에 의해서 파괴되었고, 그 자리에 17세
기에 다시 재건되었으나 20세기 초 1. 2차 대전을 겪으면서 독일군에 의해서 
파괴되었다. 그러다가 1954년 재건되었고 1983년에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
추게 되었다. 깔뱅이 비록 종교개혁의 위대한 인물이지만 그의 생가는 역사의 
거센 풍랑을 뼈저리게 경험하며 초라하게 보존되었다. 

 그 안에는 꼭 구경해야 할 것들이 있다. 깔뱅의 사인, 깔뱅의 문장(안내원
에게 부탁하면 책이나 노트에 찍어 줌), 면죄부, 성경번역본들, 기독교 강요 원본, 

리용 개신교회 예배당, 이동식 강대상과 성찬기, 성찬메달, 성경의 무게(Poid 
de la Bible, 종교개혁의 오직 성경 정신을 가장 잘 표현한 그림) 등
 나는 20년 전에 그곳을 처음 방문하여 이 유물들을 보면서 눈물이 나고 
가슴이 울컥하는 진한 감동을 경험했다. 복음적인 신앙이 무엇인지, 개신교도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지금 나의 모습은 어떠한지를 돌아보는 순간이었다. 

 프랑스에 사는 개신교인이라면 한번쯤은 이곳을 방문하여 종교개혁자 
깔뱅과 프랑스 개신교도인 위그노들의 행적을 돌아보고 그들의 정신을 되새기고
경건의 옷깃을 새롭게 고쳐 매는 시간을 가지는 것만큼 값진 것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