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뱅(Calvin)의 동료였던 니콜라 콥(Nocola Cop)이 파리 대학의 새로운 학장으로 부임하면서 각 대학에 보내는 메시지를 1533년 10월 31일 만성절 (Tous saints)에 마뛰랭 교회(eglise des Mathurins) 교회에서 하게 되었는데, 그가 그 연설문 작성을 깔뱅에게 의뢰한 것이다. 깔뱅은 이 연설문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마태 5장 3절)라는 주제로 “기독교 철학”을 전개했 는데, 내용 전반에 복음적인 진리를 대변하고 있었고, 깔뱅 자신의 고유한 신학사상 뿐만 아니라 루터와 에라스무스의 사상까지 접목 시켰다. 이 일로 소로본느 대학 교수들은 진노했고 두 달에 걸친 고소에 의해서 국회는 이 연설문의 저자를 이단으로 규정하게 되었다. 두 젊은 지성이 시대를 거스르는 큰 사고를 치고 만 것이다. 당시 깔뱅의 나이는 24살이었다. 이 일로 두 사람은 쫓기는 신세가 되었고, 깔뱅은 프랑스를 2년 동안 이리저리 떠돌다가 스위스 바젤로 도피하게 된다. 그는 바젤에서 개신교 역사상 가장 탁월한 기독교 변증서인 “기독교 강요”를 완성해서 프랑스 왕인 프랑소와 1세에게 헌정하였다.
나는 역사의 흔적을 찾아 프랑스까지 온 신학생들. 교수님들과 함께 이 역사적인 현장을 자주 방문한다. 프랑스 대 혁명 기간에 교회는 파괴되었고 지금은 한 평 남짓 남은 건물의 흔적에 덩그러니 안내문만 쓸쓸하게 붙어 있어서 쉽사리 그곳을 찾을 수 없고 찾는 이도 거의 없다. 바로 옆에 붙어 있는 허름한 카페에서는 이런 역사적인 사실에는 무심한 여행자들이 앉아 커피를 마시거나 와인 잔을 기울이며 일상을 즐기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에 설 때마다 두 젊은 믿음의 지성들이 영적으로 어두운 시대를 향해서 복음 메시지를 명료하고도 단호하게 외치던 거친 숨 소리를 듣는다. 그럴 때면 지금까지 살면서 큰 사고 한번 제대로 못치고 그저 작은 어려움에도 망설이고 소심해지는 나의 새 가슴 인생이 부끄러워지곤 한다.
주소 / 7 rue de Cluny 75006 Par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