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제르맹 데프레 수도원에서 겔러리 골목(rue de seine)을 따라 루브르 쪽으로 가다보면 프랑스 개신교회의 요람이 되었던 파리에서 가장 좁은 골목이 나온다. 그 이름은
우선, 1555년에 La Ferriere라는 기사가 자신의 아이의 세례를 가톨릭 신부를 통해서 받고 싶지 않다고 하며 유아 세례를 요청하였고, 위그노들은 그들의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인 Jean Le Mocon이 유아세례를 집례하게 했다. 이것이 바로 프랑스 개신교회 최초의 세례식이 되었다.
또한, 1558년에 프랑스 개혁교회 총회가 Poitier에서 결성되고, 깔뱅의 영향 아래 1559년 5월 25-29일에 72개 교회의 목사들과 대표들이 이곳에 모여서 총회를 열었고, Francois de Morel이 의장이 되었다. 그들은 여기서 신앙고백서 (La Confession de foi)를 채택했고, 이것이 1572년에 라호쉘에서 발표되어 그 유명한 <라호쉘 신앙고백(La Confession de foi de La Rochelle)>이 되었다.
그리고, 1559년 같은 해에 그들의 모임이 발각되어 Vicomte의 부인과 그의 아버지는 체포되었고, 그들 가운데 4명이 50명의 무장한 군인들을 맨몸으로 그 좁은 골목길에 서서 막아냈다. 그러는 동안에 위그노들은 골목 반대방향 으로 빠져 날 갈 수 있었다.
지금은 이 소중한 장소가 개인의 화랑으로 사용되고 있고 그 흔한 유적지 푯말하나 없는 상태이다. 다행히 주인의 마음씨가 좋아서 총회가 열렸던 지하실을 구경할 수는 있다. 언젠가는 그곳에도 위그노 유적지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세워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