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젊은 시절에 선배 목사님으로부터 “어떤 목회자든지 성실하게만 하면 500명 목회는 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꼭 그렇게 된다는 진리로 이해하지는 않았지만 성실한 자세로 목회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교회를 개척하면서 지금까지 성실한 자세를 잃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다. 설교를 성실하게 준비했다. 세상에 탁월한 설교자들처럼 잘 하지는 못해도 성실하게 원고를 준비하고 진지하게 전하는 것은 나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도를 성실하게 하려고 했다. 세상에 탁월한 기도 사역자들처럼 신령하지는 못해도 성실하게 엎드려 주님을 의지하는 것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도들을 성실한 태도로 대하려고 했다. 탁월한 목회자들처럼 성도들에게 매력을 주지는 못할지라도 그들을 성실한 마음으로 만나는 일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원로 선배님으로부터 “목사는 주인의 일을 잘 하려고 하면 되지 더 잘 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을 들었다. 그 말이 나를 떠나지 않고 내 마음에 메아리가 되어 자꾸 생각난다. 주님의 종이 주님의 일을 잘 하려고 하는 것은 성실한 태도지만 더 잘 하려고 하는 것은 뭔가 자기를 나타내려는 의도를 품은 태도이다. 종은 그저 주인이 원하는 것만 성실하게 잘 감당하면 되는 것이다. 그 본분을 망각하고 그 분야에서 더 잘 해보려고 더 튀어 보려고 오버하다가 호되게 당하는 수가 있다. 종은 주인의 것을 잘 관리하고 주인의 자녀들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자기를 버리기까지 해야 하는데 자기가 더 멋진 종이 되기 위해서 자기 이미지 관리하느라고 직무를 유기하다가 혼 줄나는 수가 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한다. 그러나 종은 이름이 없다. 그저 종일뿐이다. 그의 이름은 주인의 종일뿐이다. 더 잘해보려는 방자한 생각에 빠져 나를 불러주신 우리 주님께 누를 끼치지 않도록 마음과 생각의 옷깃을 여민다. 더 잘하려고 하지 말자. 주님이 시키는 대로만 성실하게 잘 하자. 더 훌륭한 목사가 되려고 하지 말자. 내가 망가 지더라도 우리 주님의 일을 성공시키는 종으로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