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파리에 도착했던 1996년 한국은 삐삐의 시대였다. 파리는 삐삐시대 조차 없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스마트폰이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하다고 할 만큼 스마트폰과 친밀한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이 녀석이 엄청 똑똑해져서 내 일정과 중요한 메모를 관리해주고 갑자기 떠오르는 목회와 선교 아이디어와 설교를 언제든지 기록했다가 사용할 수 있게 해 준다. 세상 소식도 실 시간 전달해주고 소중한 추억들도 사진에 담아 저장해 주고 성경과 찬송가, 불한사전 등 내게 필요한 대부분이 이 작은 스마트폰 안에 담겨있다.
나는 내 글씨체에 대한 불만이 있어서 수첩이나 노트에 아이디어들을 기록하면서도 만족스럽지 못했는데 이 녀석 안에 기록하는 일은 그럴 일이 없으니 기록의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다. 카카오 톡으로 심방도 하고 회의도 하니 시간도 아낀다. 가끔은 설교나 강의 원고를 여기에 담아서 이거 하나 들고 올라설 때도 있다.
문제는 그러면서 이 녀석에게 내 인생이 종속되어간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이 녀석에게 침투해서 내 정보를 빼 갈수도 있고 이 녀석을 잃어버리면 내 인생의 기록들이 다 날라 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미 몇 번 그런 경험이 있다. 또 이 녀석이 내 아내나 아이들보다 내게 더 친밀한 존재가 되고 우리 식구들도 나보다 그 녀석들과 더 친해지며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기도하고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시간을 이 녀석이 빼앗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스마트폰은 나에게 아주 유용하고 신실한 비서이면서 내 인생의 소중한 것들을 빼앗아는 매우 위험한 날 강도로 돌변할 수도 있다. 앞으로 이 녀석이 내 인생과 사역에 신실한 비서로만 존재할 수 있도록 지혜롭게 대처해야겠다.
주여, 스마트폰을 바르게 잘 사용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