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4일은 프랑스 혁명 기념일이다. 프랑스 인들은 이 날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매년 기념행사를 거하게 한다. 1789년 7월 15일에 국민군 총사령관 라파예트(Lafayette) 장군이 시민들에게 나누어준 모자의 색깔에서 기원했다고 하는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하는 삼색기(La tricolore)를 자랑스럽게 흔든다. 그들은 최초로 시민국가를 시작한 위대한 민족이다.


    하지만 위대한 혁명을 이루던 그 시대에 그들은 아프리카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그곳에 삼색기를 꽂고 원주민을 억압하고 약탈했다. 1960 년대 서구 식민통치를 끝내는 순간에도 프랑스인들은 “식민지 협약”이라는 불평등 조약을 만들어 지금까지 실질적 지배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면서 여전히 자랑스럽게 삼색기를 흔든다.


    교회사에서도 19세기를 “위대한 세기”라고 한다. 서양의 수많은 위대한 선교사들이 아프리카를 비롯한 선교지를 탐험하며 복음을 전하고 희생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선교사들이 선교지에서 목숨을 잃어서 아프리카는 선교사 들의 무덤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발견하고 소개한 모든 것들이 탐욕스럽던 유럽 열강의 식민정책의 길잡이가 되었다는 것이 우리의 아픔이다.


    세상의 일에는 어두움 면과 밝은 면, 양면성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양면성을 알면서 고의적으로 유지하면 이중성이 된다.


    고대 철학자 플라톤은 이 양면성을 파르마콘(pharmakon)이라고 했다. 이 단어는 약()이라는 뜻과 독()이라는 뜻있다. 경우에 따라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약국(pharmacy)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래서 종종 약국간판에 독의 상징인 독사를 그려 넣은 것이다.


    이 세상은 파르마콘 세상이다. 내가 하는 일이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 그러기에 자기반성 없이 살면 이 양면성이 이중성이 된다.


    내가 하는 일들은 어떤가? 자기반성을 하며 옷깃을 여며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