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서른셋에 프랑스로 떠날 때 선배님이 걱정하며 하던 말이 기억 난다. “한번 나가면 다시 들어오기가 쉽지 않을 텐데......” 어쩌다 보니 타향살이가 20년이나 훌쩍 지나 버렸다. 그의 말이 사실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20년 만에 처음으로 고향에서 추석을 보냈다. 이제 이곳이 어릴 적 그 고향은 아니다. 내가 아는 분들은 세상을 떠난 경우가 많고 어쩌다 마주친 젊은 사람들은 어느 집 자녀들인지 조차도 모르겠다. 간혹 아는 분들을 마주치지만 옛날 같은 정겨움은 없고 그저 피상적인 인사뿐이다. 만나면 반가워하며 이야기 꽃을 피우는 파리가 그리워진다.


   들판은 경지정리가 잘 되고 도로가 포장되어 편리하지만 꾸불꾸불 논두렁과 미루나무 가로수길이 없어졌고 어린 시절 뛰어 놀던 뒷동산은 숲이 우거져서 들어갈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고향의 모습은 이제 추억 속에만 존재할 뿐이다.


    어머니가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해서 대화가 쉽지 않다. 심장수술과 암 수술을 잘 견뎠지만 정신은 약해진 것 같다. 농사일을 하시며 이런 어머니를 돌보시며 지내시는 아버지가 안쓰럽다. 그나마 고향에서 맞이하는 추석이 감격스러운 것은 거기에 부모님이 아직 살아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늘나라를 소망하는 것도 우리의 하늘 아버지가 거기에 계시기 때문일 것이다.


   오랜만에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를 찾아갔다. 70 중반에 얻은 첫 손자인 나를 안고 업어 키우신 분들이다. 나는 엄하고 무뚝뚝한 아버지 병약한 어머니를 둔 덕에 부모의 자상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산소 앞에 서니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사랑받던 어린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서울 미팅을 위해서 추석 날 오후에 부지런히 서울로 출발했지만 200km를 7시간이나 걸렸다. 민족 대이동이라는 말을 실감했다. 추석 명절에 고향을 찾는 마음으로 이 땅의 삶을 마치고 돌아갈 하늘 본향을 늘 사모하며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