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간에 예장 유럽 교회 협의회와 함께 알자스지역과 스위스 지역을 방문하여 종교개혁자들의 삶을 돌아보았다. 이 내용들을 내년 1월부터 기독공보에 12개월간 연재하게 된다. 스트라스부르그의 마틴부처, 바젤의 외콜람파디우스, 취리히의 츠빙글리, 제네바의 칼뱅과 기욤 파렐 등 수 많은 개혁자들이 역사의 흐름을 바꾸시려는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았다. 


소용돌이치던 시대에 그들의 용기와 헌신은 역사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그 중에서 장 칼뱅은 종교개혁 2세대를 이끌며 놀라운 일들을 이루어냈다. 그는 병약하고 불행한 사생활을 가졌고 자신의 조국인 프랑스에서 쫓겨나 망명자로 나그네로 이방인으로 살았으나 그것이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로 인해서 제네바는 종교개혁의 중심도시가 되었고, 최고의 교육도시가 되었으며, 개혁교회의 성직자들은 양질의 신학과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에게서 장로교회의 창시자인 스코틀랜드의 개혁자 존 낙스가 나왔고, 사회계약론으로 프랑스 혁명에 영향을 준 장 자크 루소와 국제 적십자를 만든 앙리 뒤낭 등이 나왔다. 칼뱅은 종교개혁 당시에 각 나라들로부터 박해와 죽음을 피해서 들어오는 난민들을 위해서 제네바 시내 모든 건물의 꼭대기 층을 비우게 하여 난민들에게 제공하도록 하였는데 그것이 오늘날 제네바가 국제사회의 각종 문제들을 중재하는 역할을 하는 평화의 도시가 된 기원이다.


칼뱅은 제네바에서 추방되어 스트라스부르그에서 위그노 난민들을 위해서 목회하다가 다시 제네바 시의 부름을 받게 되었을 때 “제네바로 돌아가서 그 어려운 일을 하느니 차리라 백번 죽는 것을 택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내 삶은 내게 속한 것이 아님을 알기에 나는 내 심장을 주님께 즉각적으로 신실하게 바치나이다.”라고 고백하고 다시 사명의 십자가를 짊어지기 위해서 제네바로 돌아갔다.


하나님께 “즉각적이고 신실하게!”(prompte et sincere)자신을 드린 한 사람의 영향력이 참으로 크다. 지금도 우리 주님은 그런 사람들 찾고 계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