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3월에 총회 파송 선교사로 프랑스에 온 이후 이번이 처음 겨울 방문이다. 파리를 출발하면서부터 고국의 눈을 볼 생각에 마음이 설렜다. 한국에 도착한 한 날 저녁에 눈이 많이 내렸다. 종로에서 첫 미팅을 마치고 나는 눈길을 걷고 또 걸었다. 20년 만에 한국에서 경험하는 눈은 나의 감정을 어린 시절 동심으로 데려다 주었다. 
    내가 살던 고향 서천은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는 곳이다. 기다리던 첫눈이 내리는 날이면 나는 그 눈발을 얼굴로 맞으며 신이 나서 뛰어 다녔다. 우리 집 강아지도 내 심정을 아는지 덩달아 꼬리를 흔들며 이리저리 뛰어 다녔다. 자고 일어나면 집 주변의 나무에 눈이 소복이 쌓였고 천지가 눈으로 덮였다. 집 뒤꼍에는 눈을 피해 내려온 산토끼가 다녀간 흔적이 보이고 아버지는 마당과 길을 빗자루로 쓸면서 새로운 길을 내셨다. 우리 어린애들은 비료봉투를 가지고 눈썰매를 만들어 미끄럼을 탔고 동네 어른들과 형들은 눈을 행동이 둔해진 꿩과 토끼를 잡으러 산을 누볐다. 주일이 되면 나의 아버지는 어린 나를 지게에 태워 교회로 가셨고 교회 안에는 장작난로를 피우고 예배를 드렸다.  
    다음날 아침 서천에 전화를 하니 아버지가 뇌경색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중이라고 한다. 추운 날씨에 산에서 땔감 나무를 하시고 간밤에는 무슨 걱정거리로 잠을 설치시고 나서 그리되셨다는 것이다. 건강과 힘이라면 남의 추종을 불허하신 분이셨는데 흐르는 세월은 막을 수 없나보다. 아버지는 나를 지게와 목마로 태워 주셨는데 자식인 나는 그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음을 깨닫고 마음이 착잡할 뿐이다. 해외생활을 하는 자체가 불효임을 어찌하겠는가? 내가 한국을 방문하는 중에 이런 일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며 이런 상황까지도 자로 잰 듯이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릴 뿐이다. 앞으로 닥칠 일들이 많이 있겠으나 기도하며 의연하게 대처하려고 한다. 
우리 가정의 일들이 목회와 사역에 부담을 주지 않게 되도록 모든 교우 들께 기도를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