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회는 76%가 20.30대로 이루어진 젊은 교회이고 그 중에 대부분은 유학생들이다. 우리는 선교센터를 마련하거나 기타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하기에는 재정적으로 힘든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비전을 품고 기도하며 재정을 조금씩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파리지역 총회장이 카즈노브 목사를 만나 식사를 하던 중에 우연히 던진 말이 기적을 낳았다. “혹시 우리가 선교센터로 사용할 수 있는 건물 하나 없나요?” 그 말을 들은 카즈노브 목사는 즉시 그런 건물이 있다고 하면서 그 다음 주간에 그 건물을 소유한 프랑스 교회 임원들과 만남을 주선해 주었고 우리는 그 건물을 수리하는 조건으로 무상 임대를 받게 되었다. 우리의 작은 수고에 주님께서 동그라미를 붙여 주신 것이다.이런 기적은 계속해서 일어났다. 오르쥬 지역에 있는 건물을 또 이런 식으로 얻어서 선교관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동그라미 기적은 성도들의 삶에서도 일어났다. 한 자매는 평범한 미술가였다. 그녀의 소원은 우리 교회에서 자신이 가장 십일조를 많이 내고 싶다는 것이었다. 미술을 그려서는 여간해서 이루기 어려운 소원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 순수한 마음이 기특했고 하나님께서 그마음을 받으시기를 기도했다. 그런데 실제로 하나님은 그녀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녀의 작품에 동그라미의 기적을 베풀어주셨다. 지난 수년간 그녀는 평범한 작가에서 세계적인 작가로 올라섰다. 작품을 만들기가 무섭게 판매된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작품을 선호하고 소장하기를 원한다. 그 작품이 작게는 3백만 원에서 보통은 수천만 원을 넘어 억대에 이른다. 그렇게 그녀의 간절한 기도가 이루어졌다. 돈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예술가의 순수한 마음을 받으시고 베풀어 주시는 동그라미의 기적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는 은혜의 기적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최선을 다하고 죽도록 충성한다고 한들 그 가치와 크기가 도대체 얼마나 되겠는가? 새 발의 피와 같은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귀하게 여기시고 그 뒤에 은혜의 동그라미를 붙여 주신다. 은혜의 동그라미는 부모가 자식에 붙여주시는 어버이의 은혜와 같다. 자식이 하는 시늉만 해도부모는 그것을 귀하게 보고 풍성한 사랑을 쏟아 붙는다. 그래서 부모의은혜라고 하지 않는가? 그 은혜로 우리가 살듯이, 성도는 위로부터 부어주시고 우리의 수고 뒤에 붙여 주시는 은혜의 동그라미 덕에 사는 사람들인 것이다.
    나는 하루를 시작하면서 늘 이렇게 기도한다. 
   “주여, 오늘도 동그라미의 기적을 베풀어 주소서. 저는 무익하고 부족한 종이기에 주의 은혜만 의지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