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젠도르프 (Nicholas Ludwig Von Zinzendorf) 백작은 개신교 신앙을 찾아 드레스덴에 이주한 남부 오스트리아 귀족 집안의 후예였다. 그의 아버지는 작센 선 제후국 장관이었고, 필립 스패너를 열렬하게 지지했던 외할머니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할레에 있는 프랑케 페디고기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프랑케와 깊은 유대를 맺었으며 다섯명의 친구들과 “겨자씨 모임”을 결성해 활동하면서 복음전도와 세계선교의 꿈을 일구어 나갔다. 1719년에 그가 네덜란드와 프랑스로 연구여행을 떠난 중에 들른 뒤셀도르프에서 이탈리아 화가 도메니코페티(Domenico Feti)가 그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 그 작품에 기록된 “내가 너를 위하여 이것을 당했건만 너는 나를 위하여 무엇을 하였느냐?라는 글을 보고 순간적으로 신비체험에 들어간 후에 인생의 회심을 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일생을 주님을 위해서 바치게 된다. 그는 로마 가톨릭 교회와 보헤미아 국가 교회의 박해를 피해서 도망 나온 얀 후스의 후예들인 형제단(The Unity of the Brethren)을 영접하고 자신의 영토인 헤른후트를 그들에게 제공하면서 앞으로 세계 부흥과 세계 선교운동의 산실이 되는 기독교 공동체를 시작하게 되었다.


    독일에는 이런 개신교회의 보화들이 곳곳에 존재하는 나라이다. 그들의 무표정한 분위기, 딱딱한 말투, 큰 덩치가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그들의 진지함, 열정과 영성, 개신교회의 역사는 나로 하여금 친근감을 갖게 만든다. 이번 탐방에서 나는 금광을 캐듯이 독일 땅에 깊숙하게 숨어 있는 그 옛날 역동적으로 숨쉬던 역사와 믿음과 영성의 보물들을 캐내고 싶다는 열정이 생겼다.


    박선교사는 "우리의 사명은 마중물이지요."라고 했다. 우리는 멋진 만찬을 마무리 하면서 우리가 유럽에서 감당해야 하는 사명을 “마중물의 역할”이라고 정의했다. 2000년 기독교 역사와 500 년개신교 역사를 꽃 피웠던 유럽 땅에서 동방의 고요한 나라 출신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선교적 역할이 무엇일까? 이 땅의 교회와 성도들의 신앙은 다 변질되어 죽었으니 갈아 엎고 우리가 가져온 신앙과 영성을 심어야 한다는 오만한 생각을 버리고 이미 이들이 경험했고, 지금도 가지고 있으나 잠들어 있는 영적자산들을 새롭게 뽑아올리는 마중물의 작은 역할을 겸허하게 감당하는 것이 우리를 이 유럽 땅에 보내신 주님의 뜻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