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말 서부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 날씨는 적도 더위의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우리 일정은 크게 두개로 나누어진다. 전반부는 사쌍드라라는 도시에서 청소년 캠프를 진행하고 나머지 한주간은 아비장 근교에 있는 도시 교회와 시골 원주민 마을에 들어가서 의료봉사와 축호전도, 거리공연을 진행한다. 사쌍드라로 이동하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험하다. 내전 이후에 망가진 도로를 보수하지 않아서 250km 거리를 8시간이나 가야 하는 곳이다. 버스는움푹하게 패인 곳을 만날 때마다 속도를 줄이고 계속해서좌우로 심하게 흔들린다. 게다가 버스는 냉방이 안되고 쿠션도 없고 연소되지 않은 매연가스가 안으로 들어온다. 팀원 중에는 중고등학생들이 4명이나 있지만 누구도 그 상황을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즐기며 이겨보려는 모습이 대견스럽다. 누가 요즘 젊은이들은 고생을 싫어하고 그저 약해 빠진 애들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도착하여 여장을 풀고 다음 날 맞이할 100명의 청소년들을 위한 교실에 마련된 임시숙소에서 잠이 들었는데 밤새 천둥번개를 동반한 소나기가 내렸다. 다음 날 그곳 사람들은 지난 3개월동안 비 한 방울 오지 않던 땅에 우리 파리팀이 축복의 비를 몰고 왔다고 기뻐한다. 덕분에 캠프내내 바람이 불고 구름이 햇빛을 막아 주어서 환상적인 날씨 속에서 캠프를 진행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경험한 구름기둥이 바로 이런 것이리라. 캠프에 참여한 청소년 중에 상당수는 모슬렘들이지만 그들도 모든 순서에 진지하게 참여하였고 캠프 중에 스스로 마음을 열고 주님께로 돌아오는 아이들이 여럿 되었다.

    그 다음 주에 진행된 도시 교회와 시골 마을 사역은 구름기둥이 없었다. 현지인도 견디기 어렵다는 뜨거운 햇빛 아래 하루 종일 사역이 이어졌다. 자원 봉사를 나온 현지인 의사들과 함께 3일동안 1500명을 진료하고, 모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마을로 들어가 가정 방문을 통해서전도하고, 빵과 음료를 나누어 주고, 거리 공연을 하면서 우리 팀은 예수님 당시 갈릴리에서 제자들의 전도사역이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아비장 백성철 목사님은 시골 사람들에게 이런 일은 평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하는 행운의 기회라고 하면서 우리가 하는 사역의가치를 말하며 격려하셨다. 우리에게는 흔하고 하찮은 것도 그들에게는 희귀하게 찾아오는 행운이 된다고 하는데덥다고 적당히 할 수 있겠는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는데 이런 놀라운 칭찬과 격려의 말을 듣고 우리는 더 힘을 내어 움직였다.

그 과정에서 참으로 소중한 일이 일어났다. 우리 일행의 수송을 위해서 빌려온 버스 기사 청년이 회심을 한 것이다. 그는 우리 전도 범위가 아니어서 신경을 쓰지 못했는데 그가 찾아 온 것이다. “나도 당신들이 믿는 예수를 믿고 싶어요.”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나는 하루 종일 당신들이 하는 일을 보았어요. 우리 원주민 아이들을 자신의 아이들처럼 가슴에 품어 안고 돌보는 당신들의 모습, 빵과 약품을 나누어 주는 모습, 모두 피곤하고 지쳤을 텐데 주변을 정리하며 쓰레기를 치우는 모습을......”라고 대답했다. 그는 교회 사무실에 들어와 주님을 영접하는 기도를하고 성경을 선물로 받고 자신의 가족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겠다고 스스로 약속하고 돌아갔다

    선교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어려운 환경을 이기며 그들에게 보여주는 사소한 행동 하나가 모슬렘 청년의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열고 복음을 듣게 만든다는 것이다우리가 무심코 보여주는 사소한 행동 하나가 그들의 마음을 영원히 닫게 만들기도 하겠지. 잘 구성되어 명쾌하게 전달되는 설교나 프로그램만큼이나 우리가 무심코 드러내는 표정과 행동도 큰 호소력을 가진 사역이 된다는 것을 가슴으로 배우는 시간이었고 삶이 설교가 되게 하라는 깨달음의 순간이었다. 나는 이 청년이 그 가족과 이웃을 구원하고 주님을 위해서 살아가는 신실한 제자가 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드리고 있다.

    숙소인 교회로 돌아오니 교회를 지키는 개 두 마리가 우리를 반겼다. 매년 우리를 반기며 적으로부터 교회를 지켜 내던 복돌이는 죽었고 새로운 녀석들이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이다. 사람보다 신실하게 교회를 지키는 사명을 감당한 복돌이게 아비장 교회가 집사라는 거룩한 직위를 내리고 그 녀석을 복 집사라고 불렀다. 작년에 이미 그 수명이 다해가고 있음을 보았지만 막상 복 집사가 반기지 않으니 허전한 이 기분은 무엇인가백목사님에 의하면 복 집사는 일생을 충성스럽게 교회와 목사님을 지키는 사명을 다했고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도 주인의 마음을 헤아렸다고 한다. 목사님과 교인들은 복집사가 죽는 순간을 바라보기가 어려우니 자신들이 없을 때 죽어 달라고 말했는데 실제로 모두가 출타했다가 돌아오는 동안에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개보다 못한 놈, 개 같은 놈들이 얼마나 많은가? 미물에 불과한 복 집사도 이토록 충성스럽게 주인을 섬겼는데 나는 나의 주인이신 우리 주님께 어떤 존재일까끝까지 잘 달려갈 수 있기를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