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직업이 말을 하는 일이어서인지 나는 자꾸 말을 많이 하게 된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도 말을 할 때도 있다. 무의식 속에 말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듯하다. 다른 사람을 자꾸 가르치려고 한다. 이것이 목사의 고질병이다. 파리에 산다는 이유로 나는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 사람들 가운데 나보다 말을 더 많이 하는 사람도 있다. 


    파리에 와서는 여기서 22년이나 살고 있는 내 말을 들어볼 생각은 안하고 자기들 얘기를 쏟아 놓는다. 내가 어쩌다 한 마디 하려고 하면 그는 딴전을 피우거나 또 다른 화제를 이어간다. 말은 탁구공처럼 서로 주고받아야 재미있는 법인데. 그럴 때면 대화의 재미도 없고 불쾌하기도 해서 나는 적당히 대화를 마무리하곤 한다. 그러다가 그게 내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속내를 들킨 것처럼 움찔한다. 


    물론 나와 눈을 마주치며 내 말을 경청하는 이들도 많다. 그럴 때는 내가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들고 아낌없이 내가 가진 정보를 전해준다. 사실 말 잘하는 것보다 남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 실력이다. 말귀를 알아듣고, 말하지 않은 행간까지 읽어내고, 말하는 사람도 알지 못하는 영혼의 말까지 들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자의가 아니었다. 우리 교회 김영욱 집사님이 주보를 디자인하면서 목회칼럼코너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목사님이 글을 써서 올리면 목사님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한 주간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교인들이 알게 되고 소통이 이루어집니다.”라고 했다. 그 말이 옳았지만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몇 주간 글을 썼는데 집사님이 전화를 해서 “목사님 글이 너무 무거워요”라고 한다. 그 말에 자기 방어 시스템을 발동시키며 내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하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아내가 “집사님 말씀이 백 번 옳고만 그러시네.”라며 훈수를 두는 것이다.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는 주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그때부터 좀 더 마음이 들어간 글을 쉽게 쓰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그 덕에 “본질을 붙들면 후회하지 않는다.”(국민북스)라는 첫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그때 두 사람의 말을 들은 덕분이다. 


주여! 입술을 지켜 주시고 다른 이의 말을 경청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