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대개 이 두 개의 범주 중의 하나에 속하기 마련이다. 디아스포라로 파리에서 머무는 우리는 유학, 사업, 직장 생활 등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간다. 학생들은 디플롬을 획득해야 하고 사업가들은 사업에 성공해야 하고 직장인들은 직장생활에서 밀려나지 않고 업적을 이루어 진급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네 삶은 참으로 여유가 없고 치열하기까지 하다. 그렇다고 지금 여기를 누리고 즐기는 것을 희생시켜야되겠는가? 목적을 향한 창날이 무뎌져서도 안되겠지만 지금 이 순간에 즐겁게 행복하게 최선을 다해서 사는 것을 잃어서도 안 된다. 그렇게 지금 여기를 살아낸 찰나의 점들이 모여서 인생이라는 선을 이루고 그 선이 인생궁극의 목적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공부도 즐겁게 하고, 친구도 즐겁게 사귀고, 문화도 즐겁게 즐기고, 신앙생활도 즐겁게 하고, 연애도즐겁게 하고 사업과 직장생활도 즐겁게 해야 한다. 지금은 연습이고 진짜 인생은 어느 시점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여기서 사는 인생이 우리의 유일무이한 진짜 인생이다.


    등산의 목적이 산 정상에 오르는 것이라면 가능한 한 빨리 올라가야 한다. 필요하다면 헬기를 타고라도 몰라 갔다 오면 될 것이다. 하지만 등산의 목적은 준비하고 출발하는 그 시간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정성까지 올라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중간에 만나는 것들을 보고 즐기고 느끼는 것이 진짜 등산다운 등산이다.

우리 한국인들의 여행은 케네시스적인 경향이 있다. 그래서 14일동안에 10개국 찍기라는 기이한 상품이 나오고 그런 상품이 인기를 끌게 된다. 여행객들은 차에서 내려서 사진찍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면서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잠들어 버린다. 가이드이 설명은 관심이 없고 그 지역 최고 요리의 맛도 즐기지 못한다. 그저 허기를 달래기 위해서 정신없이 30분 안에 먹고 꽁지빠진 닭이 쫓기듯이 여행사 스케쥴에 이리 저리 밀려 다니며 자신들이 찍고 온 나라 숫자만 세고 있다. 여행마저도 치열해야하는 우리네 현실이 가슴아프다. 여행을 준비하는 것과 공항에서 출국준비를 하는 것,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것과 주위에 흐르는 아름답고 진기한 장면들을 바라보는 모든 과정 전체가 여행이 아닐까?


    나는 에네르기적 인생을 살다가 케네시스적 인생에 도달하는 삶을 살고 싶다.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살지 못하는 사람은 지나간 과거에 집착하고 쓸데없는 후회를 하거나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에 기웃거리며 염려하며 살기 마련이다. 케네시스적인 삶은 사람을 심각하게 만들지만 에네르게이아적 삶은 사람을 진지하게 만든다. 심각한 것은 스트레스와 지루함을 주지만 진지한 것은 행복과 즐거움을 준다. 불현듯 인생의 마감시간 앞에 섰을 때도 인생이 케네시스적 삶은 절망으로 이끌지만 에네르게이아적인 삶은 만족으로 인도한다. 지금 여기를 춤추듯이 즐겁게 살아서 지나가 버린 과거에는 의미를 부여하고 오고 있는 미래에는 희망의 화살을 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인생이 어디 있을까? 이것이 올 여름 나의 인생 공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