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풍한설의 겨울을 견뎌야 했던 우리 민족은 기나긴 겨울나기를 하면서 인생의 지혜를 찾아냈다. 북풍 찬바람을 견뎌낸 인내와 저력으로 침략과 고난으로 가득한 역사의 한설까지도 견뎌내고 어지간한 인생역경은 두려워하지 않는 민족이 되었다. 수 년전 프랑소와 클라베홀리 목사님과 한국을 방문했을 때 그는 한 번 들려준 대금소리에 심취했다. 대금에서 무엇을 느꼈느냐고 물었더니 “한(恨)”이라고 했다. 지금도 만나면 그때 그 한에 대해서 말하곤 한다. 그는 우리 민족의 감정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외국인이었다. 그 한의 소리가 멀리서 온 외국인의 마음을 울린 것이다. 우리의 한은 슬프지만 고결한 어떤 감정이다. 차가운 날씨와 역사의 역경을 많이 겪었지만 그것을 승화시켜 나갔기에 만들어진 느낌이다.
    다시 눈 이야기로 돌아가자. 프랑스 파리에서 거의 볼 수 없는 것이 내 고향에서 하늘에서 천사들이 송이송이 뿌려주는 함박눈이다. 하룻밤 자고나면 그 눈이 온 세상을 덮어버린다. 집 뒤 처마 밑에는 눈을 피해 잠시 머물다 간 산토기와 비둘기의 흔적이 남았고. 낮이 되면 동네 아저씨들과 청년들이 산에서 토끼몰이를 하곤 했다. 함박눈을 털어 버리면 여전히 푸름을 유지하고 있는 사철나무와 소나무와 대나무가 있다. 우리 집 뒷동산에 제법 넓은 대나무밭이어서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혹독하고 기나긴 겨울을 보내야 했던 우리 민족은 그 추위를 견뎌내던 식물을 소중히 여기며 그들이 보여준 끈기와 인내와 고결함을 배우고자 했다. 그것이 바로 세한삼우(歲寒三友)라고 불렸던 송.죽.매(소나무. 대나무. 매화)다.
    이들은 혹독한 겨울을 견디는 저력과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변치 않는 절개의 고결함을 나타내는 식물들이다. 이어령 선생은 세한삼우를 추위의 미학이라고 부르며 이렇게 썼다.“겨울이 오면 옛날 한국인들은 ‘구구소한도’를 그리는 습관이 있었다. 먼저 동짓날이 되면 아홉 날에 아홉 번을 곱한 숫자인 여든한 송이매화꽃과 꽃봉오리를 그려 창가에 붙인다. 그리고 매일 하나씩 매화꽃과 꽃봉오리에 붉은 색깔을 칠하며 추위를 없애 나갔다. 이렇게 여든한 송이의 꽃에 색이 칠해져 ‘구구소한도’가 완성되면 그 그림을 찢고 창문을 열었다. 그럼 창문 밖에서는 정말로 매화 향이 퍼지고 초봄의 햇살이 가득 비추고 있었다. 이것이 추위의 미학이다.”(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