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우리 교회를 방문하셔서 선배 목사님께서 주일 설교를 시작하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감리교에는 나원용 감독이 계시고, 기장에는 강원용 목사님이 계시고, 예장에는 성원용 목사가 있다."
    나는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분을 거의 만난적이 없고, 어쩌다 그런분을 만나면 매우 어색함을 느낀다. 그런데 그 흔하지 않은 이름중에 두분의 훌륭한 목사님들이 계시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내 부모님께서 이름 하나는 잘 지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분들과 나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그것은 그분들은 유명하시고 훌륭하시지만 나는 무명하고 훌륭하지도 못하다는 것이다.    
    지난 주에 강원용 목사님께서 89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 세상을 떠나셨다. 사실 나는 그분을 직접 뵌적은 없다. 간접적으로, 그리고 그분이 쓰신 저서들을 통해서 만났을 뿐이다. 그분은 지적으로 뛰어난 분이시면서 모든 분야에 발이 넓은 마당발이시다. 그러면서도 그 관계를 이용해서 자신의 이득을 취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돕는 일에 나선 분이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독재정권에 의해서 죽음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을 때 전두환 대통령을 직접 찾아가서 탄원했고, 그것이 한 사람을 살리게 되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강목사님은 기독교의 진보계와 보수계를 넘어서는 화해와 일치를 위해서 땀흘리신 분이시다.

    이미 주님 품에 가신 분의 업적을 논하는 것이 본인은 정작 원치 않는 일이고 또 본인에게 누가 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게 그분을 그려 보고 싶은 것은 그분이 우리 후배들에게 보여주신 본을 나도 따르고 싶은 마음에서 이다.

    선배님, 주님 품에서 평안하소서.
    저도 그 날까지 주님 나라를 위해서 부끄럽지 않게 살도록 하렵니다.
    원용이라는 이름값을 하는 사람이 되도록 하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