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 등장 하는 이야기가 있다. 요약하면 이런 것이다. 어느 날 태평양 한 가운데서 두 명의 남녀가 조난을 당해 튜브에 의지하며 표류하고 있었다. 그들은 한 동안 나란히 바다 위에 떠서 음료를 마시며 잡담을 나눈다. 한 참 후에 여자는 ‘저는 살 길을 찾아 봐야겠어요. 이렇게 죽을 수는 없잖아요.’라고 말하며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는 섬을 찾아서 헤엄쳐갔다. 남자는 ‘섬이 있다는 보장도 없는데 나는 구조대를 기다려 볼래요.’라고 말하며 그 자리에 남아서 남은 음료를 마시면서 시간을 보낸다. 여자는 이틀 밤낮을 죽을 힘을 다해 헤엄쳐서 어느 섬에 도착해 생명을 구했는데 남자는 그 자리에 있다가 구조대에 의해서 구조되었다.
     몇 년이 지난 후에 그들은 어느 작은 선술집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다. 그 순간에 여자는 큰 혼란에 빠진다. ‘나는 죽을 힘을 다해서 살아 남았는데 저 인간은 가만이 있다가 구조 되었다니.... 이런 불공평한 일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그녀는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그에게 고백한다. ‘사실 나는 사투에 가까운 헤엄을 쳐 나오면서 당신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고보면 인생이라는 것이 참 불공평하다. 빨리 달리는 사람이 먼저 도착하고 노력하는 사람이 성공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억울하고 화도 나고 질투의 감정도 생기고 심지어는 원한의 마음까지 갖게 된다. 우리 나라같이 경쟁이 심하고 열심히 사는 사회에 화가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유엔에서 발표한 2018년 우리 나라의 행복 지수 순위가 57위라고 한다. 이번에는 북유럽 나라들이 상위를 차지했지만 2017년에는 부탄이라는 작고 가난한 나라가 1위를 했다. 우리는 그들보다 더 열심히 살고 경제적으로도 앞서는데 행복하지 못하다면 잠시 멈춰 서서 원점부터 생각해 볼 일이다. 그렇다고 적당히 살면 행복해진다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