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린 시절에 칭찬과 격려보다는 책망과 지적질을 더 많이 받았다. 집에서 혼나고 학교에서 선생님들과 선배들에게 지적당하고 얻어맞는 일이 다반사였다. 군대 생활을 하면서 맞은 것보다 학교에서 선생님들과 선배들에게 맞은 경우가 더 많다. 당시에는 혼나고 매 맞는 일이 성장을 위한 통과의례와 같았다. 그 덕에 어지간히 힘든 일로는 끄떡도 하지 않을 만큼 강해지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위축되고 망설이는 성격이 형성되기도 했다. 시집살이 며느리가 시집살이시키는 시어머니가 되듯이, 나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본능적으로 책망과 지적이 앞세웠다. “그때 너는 잘했니?”라는 자책감이 들면서도 그 생각을 꾹 누르고. 그리고 금세 후회한다. “다음에는 이러지 말아야지~” 
    목회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40대의 내 목회는 칭찬과 격려보다는 책망과 지적의 목회였다. 40대의 열정과 어린 시절부터 습득된 성격이 어설프게 버무려진 탓일 것이다. 과거 나와 함께 했던 이들에게 미안한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50살의 능선을 넘으면서 많이 바뀌고 있다. 다행이다. 이제는 책망과 지적질 대신에 칭찬과 격려의 사람이 되어 보려고 노력한다. 율법과 선지자의 기능보다 복음과 화해자의 기능을 우선하려고 한다. 그게 모두에게 좋기 때문이다.
     하버드 대학의 심리학과 Robert Rosenthal 교수가 샌프란시스코의 어느 초등학교 학생들 20%를 무작위로 뽑아서 담임 선생에게 그 명단을 전달하면서 이 아이들의 지능지수가 높다고 했다. 8개월 뒤 그 학생들의 성적을 조사해보니 그들의 성적이 대폭 좋아졌다고 한다. 담임 선생이 그들에게 관심과 기대를 보였고 학생들은 선생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노력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로젠탈 효과’다. 
    우리 가정과 교회가 지지와 격려가 가득하고 칭찬과 위로가 꽃피는 공동체가 된다면 영적 로젠탈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거기에 천국이 임할 것이다. ‘그에게 칭찬할 만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 그에게 어떻게 지지와 격려를 보낼까. 어떤 말로 위로할까.’를 생각하면서 이웃을 만난다면 우리 주님이 그 만남에 함께 하실 것이다. ‘괜찮아, 훌륭해, 잘하고 있네.’ 이런 대화가 오고 간다면 거기서 우리는 영적 성장을 경험하는 로젠탈 효과를 보게 될 것이다.
     주여, 저로 칭찬과 격려와 위로의 종으로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