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4세의 낭트칙령은 똘레랑스가 최초로 규칙이 되 고 법이 된 사건이다. 

카트린느 드 메디치의 딸 마르고 와 혼인을 한 앙리 4세는 1589년 8월 2일에 프랑스의 왕이 되어 부르봉 왕가를 시작했다. 카트린느의 3 아들 프랑수아 2세와 샤를르 9세와 앙리 3세가 모두 일찍 죽 어서 발로와 왕가의 대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모친 잔느 달브레의 영향을 받으며 개신교도로 자라났다. 하 지만 개신교도가 가톨릭 국가인 프랑스의 왕이 될 수 없 었기에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파리는 신앙을 바꿔서라 도 얻을 가치가 있다.고 말하면서. 왕이 되었지만 지방 도시의 영주들이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다윗이 헤브론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지만 유다와 

베냐민 지파 외에 10파에는 그의 통치가 미치지 못하 다가 7년 후에 온 이스라엘이 다윗에게 돌아오고 수도도 예루살렘으 로 옮기게 되었듯이 말이다. 

  

  앙리 4세는 정복전쟁을 하 면서 자신의 통치권을 넓혀갔다. 가장 마지막까지 

앙리 4세의 통치를 부정하며 저항했던 도시가 낭트(Nantes) 이다. 그는 결국 낭트를 정복했고 그곳에서 개신교의 자 유를 인정하는 낭트 칙령을 1598년 4월 13일에 

선포했 다. 비록 통치목적으로 신앙을 바꿨던 그였지만 마음속 에 있던 위그노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부담이 있었던 것 이다. 낭트칙령은 개신교도의 신앙의 자유를 

허용한 의 미와 더불어 똘레랑스의 가치가 프랑스 땅에서 최초로 사회의 규칙이 되고 법이 되었다는 더 큰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