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부터 프랑스는 다시 똘레랑스 없는 사회로 돌입했다. 
똘레랑스의 실종은 국가와 백성을 삶을 파괴로 이끌었다. 
루이14세는 위그노를 박해하며 내쫓고 자신의 왕권을 강화해 나갔다. 
그는 바로크 시대를 열며 화려한 건축과 업적을 이루어냈지만 그 과정에서 나타난 
똘레랑스의 상실은 불행의 불씨를 만들고 있었다. 
그 결과 프랑스는 대혁명이라는 피바람을 경험해야 했다. 
루이 14세의 증손자인 루이 16세는 조상들이 차곡차곡 쌓아 놓은 과오를 짊어지고 
단두대의 이슬이 되었다. 혁명이 일어나기 전 루이 16세는 또 하나의 칙령을 발표한다. 
그것이 바로 베르사유칙령이다. 1787년 11월 7일 발표된 이 칙령을<똘레랑스 칙령> 이라고 
부른다. 이 칙령으로 프랑스는 실제적인 관용의 시대로 들어가게 되었다. 똘레랑스가 법이 되고 
사회의 보편적 가치가 되기까지 수많은 사람이 피를 흘리고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그래서 프랑스 사회에서 똘레랑스는 소중한 것이었다. 
그들은 이 똘레랑스라는 비결을  통해서 다인종 다민족 다문화에서 올 수 있는 갈등과 
대립을 극복하고 함께 어울려 사는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우리 한국인들은 똘레랑스에 대한 요구가 절절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이미 다종교 사회로서 종교나 종파들 간에 이해충돌로 인한 크고 
작은 갈등과 다툼은 있지만 그것이 학살로까지 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지역과 지방간에 갈등은 있지만 그것이 전쟁과 같은 극한 상황으로 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똘레랑스를 부르짖지 않아도 되는 관용의 사회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