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우리에게는 똘레랑스라는 말이 프랑스인들 만큼 실감나지는 않다. 
하지만 지금처럼 대립과 갈등으로 치닫는 우리 사회라면 프랑스인들이 그럴지라도 
종교적 갈등으로 전쟁이나 학살이나 박해를 겪어보지 않은 우리 한국인들은 2년 후인 
1789년 7월 14일에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다. 
혁명은 왕권과 가톨릭교회에 대한 시민사회의 저항이었다. 
혁명 이후 19세기에 개신교회는 회복과 부흥이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위기의 씨앗을 품고 있었다. 그것은 기독교 신앙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심과 무신론 
세속사회로의 진입이다. 19세기 프랑스 사회는 종교적 관용을 만끽했다. 
국가는 개신교 예배당을 건축하고 신부들에게 하듯이 개신교 목사들에게도 월급을 지불했다. 
교회는 부흥을 경험했고 해외에 선교사들까지 파송했다. 
그러나 그 기간을 오래가지 않았다. 20세기가 온 것이다. 
유럽 교회는 유럽과 세계가 복음화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유럽인들은 유럽은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가장 번영하고 깊이 있는 유토피아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20세기에 대한 그들의 기대는 여지없이 빗나갔다. 
나는 인간의 해결되지 않은 죄의 성품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똘레랑스를 돌이킬 수 없는 법으로 만들어 똘레랑스 사회를 천명했지만 갈등은 계속되었고 
제 1. 2차 세계대전으로 그 기대는 산산 조작이 나고 말았다. 
똘레랑스가 법이나 사회적 가치로 자리 잡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실현하려는 사람들의
선한 마음과 의지가 아닐까? 이런 큰 아픔을 겪은 유럽사회는 똘레랑스의 가치를 
더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만 전쟁과 갈등과 아픔 없이 공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