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룬은 신석기 시대 최초의 인류가 나타난 지역이다. 서구제국주의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이전에는 그들은 나름대로 문명을 이루며 행복하게 살았다. 하지만 1884년 베를린에서 열린 베를린 세미나에서 유럽 열강들이 아프리카를 분할통치하기로 하면서 카메룬은 독일의 식민통치가 시작되었다. 1919년 독일이 세계 1차대전에서 패망하면서 영국과 프랑스가 통치하게 되었다. 다이아몬드를 비롯한 지하자원은 유럽국가들의 차지가 되었다. 이때부터 지금도 불어와 영어가 공용어다. 1960에 프랑스로부터 독립했고 61년에 영국으로부터 독립했고 1984년에 카메룬 공화국이라는 나라가 되었지만 영국과 프랑스의 지배를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 상태다. 프랑스 대사관은 이 나라의 대통령 궁 정도의 넓은 땅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프랑스의 지배력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나는 집회 중에 카메룬 국립 박물관을 방문했다. 아프리카 다른 나라 박물관처럼 전시물이 빈약했다. 그 가운데 두 가지가 인상적이었다. 하나는 결혼풍속과 가옥구조를 보여주는 미니어처다. 일부다처제가 허용되는 이 나라는 과거 이스라엘의 계대결혼과 비슷한 풍속이 존재했다. 이스라엘의 계대결혼은 형이 자녀가 없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와 결혼해서 형의 대를 이어주는 풍속이지만 카메룬에서는 아버지가 죽으면 장남이 아버지의 부인들과 결혼해서 사는 것이다. 물론 자신을 낳은 어머니는 제외된다. 우리에게는 황당한 일이지만 그들에게는 아버지의 부인들 생존을 책임지는 데 필요한 일이었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나는 책임이 없다. 모든 책임은 저 사람들에게 있다.”라는 사고방식을 나타내는 그림이다. 유럽국가들의 식민통치시대에 관가에 잡혀가서 자신의 잘못을 이실직고하면 죽도록 얻어맞는 일이 비일비재했기에 그들은 살아남으려고 자신의 잘못을 부인하고 모든 탓을 남에게 돌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에게 자신을 죄인으로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것이 되었다. 그들은 미안하다는 말을 잘 하지 않는다. 이것은 복음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는 회개를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일본에 저항하는 것이 애국이었던 시절을 경험한 우리 민족이 권위에 일단 저항하고 보는 정신을 가지게 된 것과 유사하다.  카메룬이 복음의 능력으로 과거의 아픈 상처를 치유받고 새롭게 일어나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