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바이러스 사태를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마음은어떠하실까? “첨단문명을 발전시켰다고 교만이 하늘까지 치솟고 나 없이 살 수 있을 것처럼 깐족거리더니 어디 한번 당해 보거라.” 그런 마음이실까? “이번에 사람들의 버르장머리를 확실하게 고쳐놓겠다.” 그런 생각이실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라면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그들은 사람이상으로 질투와 분노가 많았고 저주와 복수를 일삼았다. 제우스의 아내인헤라는 질투의 화신이었고 젤로스(Zelos)는 그 이름 자체가 질투다. 
 이번 사태의 끝이 보이지 않고 상황이 더 악화되어가자 여기 저기서회개와 종말론 메시지들이 흘러 나오고 있다. 바람직한 일이다. 이런 일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죄인이고 늘 회개하는 삶의 살아야 하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종말론적 삶을 살았어야 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분노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한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은 두려워서 회개하는 종의 마음보다는 사랑에 감격해서 돌아가는 아들의 마음을 원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난주간을 가정에서 보내고 있다. 주님께서 고난의 길(비아돌로로사)을 걸으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주간이다. 이 한 주간에 하나님의 사랑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하나님은 자기의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이는 자들까지도 사랑하셨고 예수님은 자신을 조롱하고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목박는 자들까지도 용서하셨다. 그 사랑과 용서는 세상을 긍휼히 여기시는 마음으로부터 나왔다. 이것은 탕자를 향한 아버지의 마음이다. 
 그리스 말로 긍휼을 ‘스플랑크논’이라고 한다. 사람의 내장기관을 일컫는 말이다. 스플랑크논은 모든 내장기관으로부터 솟아 오르는 불쌍히 여기는 사랑의 마음이다. 우리 말로는 “애간장이 녹다. 애간장이 끊어진다. 애간장이 탄다”라고 표현된다. 집 나간 자식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어미의 마음, 죽어가는 자식을 살려보겠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아버지의 마음이다.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이다. 그는 스플랑크논 예수다. 긍휼 예수. 그는 죄를 짓고 영원한 지옥불을 향해가는 사람을 살리시려고 하늘을 버리고 이 땅에 오셨다. 그는 자기를 조롱하며 십자가에 못박는 이들까지도 용서하시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셨다. 그는 스플랑크논 예수다. 
 스플랑크논 예수님은 고통 가운데 있는 세상을 애간장이 타는 마음으로 바라보시며 기도하고 계실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희망이며 위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