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생활을 하는 사람은 불효자다. 나도 그렇다. 부모님은 연세가 들수록 자녀와 가까이 살면서 자주 만나고 싶어하지만 멀리서 산다는 이유로 그 소박한 소망마져 외면했기 때문이다. 1996년, 파리로 파송되었을 때 어머니는 충격에 쓰러지셨다. 장남인 나를 바라보며 살았는데 이억만리 프랑스로 떠난다고 하니 당연한 일이다. 지난 24년 동안에 단 한번 파리를 다녀가셨다. 몸이 워낙 병약해서 장시간 여행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내가 한국을 방문할 때도 잠시 고향집을 들르곤 했으니 세월과 함께 자식을 향한 그리움만 쌓였을 것이다. 지난 해 어머니는 고통스러웠던 이 땅의 생을 마감하고 그토록 소망하던 주님의 품으로 가셨다. 
   어머니는 나를 낳고 나서부터 평생을 병약한 몸으로 사셨다. 내 기억에 하루도 건강한 어머니를 본적이 없다. 병의 원인도 모른다. 병원에서는 병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항상 아프셨다. 아버지는 그런 아내를 보살피며 한 평생을 보내셨다. 
우리 형제들은 어머니 때문에 늘 우울했다. 나는 어머니를 고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하려 했으나 딱히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슬피 울지 않았다. 이제라도 무거운 생의 짐을 내려놓고 주님 품에 안식하셔서 다행이라는 마음과 50세를 넘기지 못한다고들 했는데 그 보다 30년을 더 사셨으니 감사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나는 어머니 1주기에 가보지 못했다. 한국에서 4월 열리는
선교대회에 갔다가 고향을 돌아볼 예정이었으나 코로나 19 사태가 길을 막았다. 
(다음주에 이어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