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리미질을 좋아한다. 군대생활을 하면서, 그리고 오랜 자취생활을 하면서 몸에 익은 탓일게다. 신학생 시절에는 와이셔츠를 있는대로 다려서 옷장안에 놓고 겨울을 준비한 개미의 마음으로 흐믓해하곤 했었다. 이렇게 맺어진 다림질하는 일과의 인연은 결혼후에도 계속되었다. 제주도 신혼여행을 호텔에서 옷을 다려주는 아주머니로부터 옷을 다리는 순서와 방법을 전수 받게 되었고, 그 후로는 좀더 전문성을 갖추어 다림질을 하게 되었다. 전문성이라는 것은 순전히 내 기준으로 말하는 것이지만 말이다.
지금도 나는 다림질을 하고 오늘도 다림질을 하였다. 사실 내가 가정에서 아내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청소기로 집안을 미는 일과 다림질하는 것 밖에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이라도 우리 집안에서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해 낼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지 않은가? 게리 채프만은 "사랑의 다섯 가지 언어"라는 책에서 "인정하는 말, 선물, 함께 하시는 시간, 봉사, 육체적인 접촉"이라고 했다. 내 아내는 봉사를 자신이 원하는 제 1의 언어라고 주장한다. 내 짐작으로는 아내가 설거지를 도와주는 것을 원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그것은 자신이 없어 도와주지 못하지만 그래도 힘을을 써야 하는 다림질은 열심히 할 수 있어 미안스러운 마음을 그 일로 대신 할 수 있으니 다행이지 않은가? 게다가 가끔 큰 소리로 치면서 그 일을 하고 있으니 더욱 금상첨화(비단위에 꽃을 더하는 것)인 것이다.
그러나 솔직히 다림질을 좋아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것은 마음수련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영성수련 아름다운 세상 찾기에서 설거지를 성자되기 첫걸음이라고 하며 훈련한다. 식기를 닦으며 마음의 죄와 허물과 상처와 아픔과 절망을 닦아내자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다림질을 하면서 그 은혜를 경험한다. 말 없이 그 일에 집중하면서 내 마음이 모아지고 뜨거운 다리미가 옷 위를 오고 가며 주름지고 구겨진 것들이 펴지는 것을 보고 느끼며 나는 내 마음도 그렇게 되기를 소원한다. 그렇게 열심히 하다보면 어느새 내 마음의 주름진 것, 얽힌 것 들이 펴지고 풀리고 새로워지는 것을 경험한다. 성령님께서 내 마음을 그 시간에 새롭게 하시는 것을 느낀다. 나는 집안일을 도우며 영성훈련까지 하는 겪이다. 그 집안 일이라는 것이 결국은 주로 내 옷을 다리는 일이 대부분이니 집안 일이랄 것도 업지만 말이다.
주여, 오늘도 내 마음에 주름 잡힌 것들을 펴 주시고, 우리 가정에 주름 잡힌 것도 펴 주시고, 우리 교회 성도들의 삶에 주름 잡힌 것들도 펴주소서. 성령의 다리미로 다려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