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른스트 블로흐는 희망의 철학자다. 그의 철학은 무신론적이고 마르크스적이며 신에 대한 이해는 마니교적인 이원론이다. 그가 희망을 이 세상과 사람 안에서 찾는다는 의미에서 그는 인본주의자다. 나는 그의 철학사상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철학에 메시아주의를  접목시켜서 희망이라는 담론을 세간에 회자시킨 업적은 인정한다. 그는 나치의 파시즘이 마구 휘두르던 폭력과 그로인한 공포와 절망의 시대를 살았다. 미국으로 건너 간 후에는 개인적으로 극도의 가난과 배고픔이라는 터널 을 통과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절망의 먹구름 속에서도 희망이라는 햇살을 바라보고 그것을 이야기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희망의 철학자라고 부른다. 그의 희망에 대한 철학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사람은 빵만이 아니라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한 희망을 먹고 산다. 
둘째, 희망을 잃은 자는 이미 삶 자체를 잃은 자이다. 
셋째, 희망은 절망을 이기게 하는 힘이다. 
넷째, 희망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배우고 연습해서 얻는 것이다. 
다섯째, 희망은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 
  지금 인류는 사상초유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코로나 19사태로 건강과 생명이 위협을 받고 있다. 사회적 격리로 인해서 인간관계가 흔들리고 이웃에 대한 신뢰대신에 의심과 경계의 수위가 높아지고 경제는 무너지고 있으며 개인은 실직과 파탄의 늪에 빠지고 있다. 이런 북세통에도 힘센 국가들은 패권주의 야심을 드러내고 권력자들은 국민의 안전을 담보한다는 구실로 통제의 수위로 높이면서 자연스레 독재의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여기 저기서 한숨과 탄식소리가 들려온다. 문명과 기술은 진보했으나 역사는 후퇴하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하다. 
  그렇다고 절망의 늪에 우리 자신을 처박을 수는 없다. 누군가는 이런 상황에서도 희망을 노래를 시작해야 한다. 실낫같은 작은 소리로 시작한 희망의 노래에 하나 둘 씩 목소리를 더해서 중창이 되고 합창이 되어야 한다.희망의 합창이 절망의 먹구름을 멀리 몰아낼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