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신학자 위그겐 몰트만은 에른스트 블로흐의 영 향을 받아 그의 희망의 신학을 전개했다. 몰트만의 신학은 20세기 중후반 독재와 가난에 시달리던 시대를 극복해 나 갈 수 있는 기반을 제시했다. 그래서 우리 나라 군부독재 시대에는 위험한 신학으로 낙인찍히기도 했다. 
  내가 몰트만에게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우연이었다. 특전사에 군대생활을 하면서 특수전 훈련을 받을 때였다. 특수전 훈련을 받는 중에 훈련병들의 정신교육시간이 있 었는데 교관은 나를 불렀다. “성 일병, 자네는 신학생 이니 구티에르즈의 해방신학과 몰트만의 희망의 신학에 대해서 비판하는 발표로 하도록 해라.” 당시는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이었기 때문에 이런 신학사상을 입에 올리 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있어서 정 보를 얻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책을 구할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입대하기 전에 읽었던 내용들을 더듬어서 어설프게 발표하게 되었다. 제대한 후에 그때의 아쉬움 때 문에 두 사람의 책을 읽어나갔다. 보수적인 신앙과 신학 을 가진 나에게 구티에레즈는 세상의 문제를 개인을 넘어 사회적이고제도적인 차원에서 볼 수 있는 눈을 열어주 었다. 몰트만은 나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몰트만의 희망은 이 세상과 사람 안에 있지 않다. 오히 려 그 희망이 끝나는 곳에서 시작되는 희망이다. 그의 희망 은 삼위일체되신 하나님과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예 수 그리스도에게서 시작된다. 그에게 십자가는 인간 세상의 절망선언이면서 새로운 희망의 시작이다. 십자가는 모든 가능성에 대한 심판이다.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다. 하지 만 십자가는 새로운 희망의 현실의 시작이다. 그 십자가 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와 저주와 절망의 현실을 짊어지고 죽으셨고 다시 살아나셔서 새로운 희망의 현실을 시작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세상과 인간의 절망과 고통에 동참하셨기 때문이다. 그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과 절망을 외면하지 않으신다. 그것이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