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면에서 천상병 시인과 빈센트 반 고흐는 유사하다. 두 사람 모두 고난의 질곡을 통과했고 그것을 작품으로 쏟아냈기 때문이다. 다른 점은 천 시인은 고통으로 가득 찬 자신의 삶까지도 긍 정했지만 빈센트는 그 고통의 삶을 부정하며 그것을 벗어나고 싶어 했다는 거다. 빈센트가 황금색의 밀밭과 그 사이로 난 길은 하늘과 맞닿은 아득한 지평선으로 이어지는 것이 이 지긋지긋한 세상을 떠나 고통이 없는 천국을 향한 소망의 표현이다. 그는 이 땅의 삶을 부정하고 고통과 아픔이 없는 천생의 삶을 긍정한 것이다. 반면에 천 시인은 모진 고문으로 망가진 자신의 몸과 정신까지도 긍정하며 그것을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이라고 긍정했다. 고난은 빈센트나 천 시인에게 예술의 원천이었다. 한 사람은 그것을 긍정함으로, 한 사람은 그것을 부정함으로. 그런 면에서 고난은 축복이다. 하지만 천 시인의 마음으로 산다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귀천 찻집을 나서며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