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면 파리 15구에 중고 책 시장이 열립니다. 오늘은 이준호 형제와 아침 테니스를 치고 그곳에 들러 책 구경을 하다가 장 라피트가 저술한 용서라는 책을 발견했지요. 주머니에 현금이 없어서 책만 만지작거리다가 다음 주 토요일을 기약해야만 했습니다. 내용은 다 파악할 수 없었지만, 돌아온 탕자를 용서하며 끌어 안은 아버지와 그 품에 안긴 아들을 그린 책 표지와 용서라는 책 제목만으로도 내 마음에 충분한 영감을 주었습니다. 아침 내내 용서라는 말이 마음에 울림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과거 내 추억을 끄집어내도록 했습니다.

    나는 모태 신앙으로 어려서부터 교회를 열심히 다니다가 청소년기에 신앙을 저버리고 세상에서 격렬하게 방황한 적이 있습니다. 그 기간이 5년 정도가 됩니다. “이렇게 살면 안 된다. 더 늦기 전에 돌아가야 한다.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온 건 아닌가?” 이 세 가지 생각으로 내 마음은 혼란스러웠습니다. 탕자도 일말의 양심은 있었나 봅니다. 그 시기에 대전에서 하숙하며 고등학교에 다녔는데, 믿음 좋은 하숙집 아주머니께서 매주 토요일 오후에 달걀 풀어 끓인 라면을 점심으로 제공하시면서 기독교 방송 “새롭게 하소서!”를 크게 틀어 놓았습니다. 출연자들이 주님을 만나 변화된 이야기를 듣는 동안 마음이 울컥하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습니다. 그러면 라면 맛은 다 달아나 버립니다. 나는 눈물을 감추려고 얼른 라면을 먹어 치우고 자리를 뜨곤 했습니다. 그때는 주인아주머니가 고약한 취미를 가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주님을 떠나 사는 동안 내 인생은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었습니다. 몸과 마음은 병들고 다시 일어서려는 희망도 없어지고 주님께 돌아가려는 마음도 점점 사라졌습니다. 돌아가기에는 너무 염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대로 살다가 빨리 죽어야겠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삶에 대한 꿈도 희망도 의지도 사라졌을 때 나는 다시 주님을 만났습니다. 자의 반 타의 반 한얼산기도원에 갔을 때 성령께서 나를 사로잡아 회개의 자리로 이끄셨습니다. 그러면서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주님은 애타게 기다리고 계셨다는 사실을. 이미 과거를 묻지 않으실 뿐 아니라 이미 용서하시고 기다리셨다는 사실을. 그때부터 나는 수많은 날을 기도하며 울고 찬양하며 울고 말씀을 읽으며 울고 십자가를 바라보며 울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 신학도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