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종교와 철학은 인생의 본질을 고민한 인류의 유산입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서 왔다가 무엇을 하다가 어디로 가는 것인가?” 이들은 저마다 정의를 내리고 나름의 해답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종교인이나 철학자가 아니더라도 조금만 생각을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하게 되는 고민이지요. 이런 고민을 체계화한 학문을 인문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 세간에 인문학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인문학은 인간의 본질과 그들이 걸어온 궤적을 탐구합니다. 조금만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문학자라고 할 수 있지요.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고민을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무 생각도 없이 그냥 사는 인생도 있지만요. 저는 개인적으로 “그냥”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 소중한 인생을 그냥 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고난은 모든 인생이 겪어야 하는 문제이며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제공합니다. “고난이 무엇인가? 왜 고난 겪어야 하는가?” 이것이 인생을 고민과 사색으로 이끄는 동력입니다. 평안할 때는 별생각 없이 지내다가도 고난을 겪게 되면 인생에 관한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불교에서는 우리의 삶을 고통의 바다라고 성경에서도 인간은 고난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합니다. (욥 5:7)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 그야말로 인생은 그야말로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죽는 생로병사의 존재입니다. 이건 기독교인이건 아니건 누구나 겪어내야 하는 필수과정입니다.

    저는 시골 농부의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흙수저 출신이지요. 저의 어머니는 나를 낳고부터부터 평생을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에 시달리다가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어려서부터 한숨을 많이 쉬었습니다. “어린놈이 왜 이렇게 한숨을 쉬냐?” 저를 지켜보시는 할머니가 늘 하시던 말씀입니다. “왜 이렇게 한숨을 많이 쉬나요? 나도 전염될 것 같아요.” 제 아내도 저를 향해서 말하곤 했습니다. 성인이 되고 목사가 되고 혼인을 해서 한 가정을 이끄는 가장이 된 후에도 나도 모르게 한숨을 많이 쉬었습니다. 제 한숨은 “왜 이렇게 인생이 힘들고 괴로운 거지?”라는 무언의 표현이었던 겁니다. 청소년기에는 깊은 우울감에 빠지기도 하고 죽음을 수없이 생각했습니다. 저 나름대로는 인생이란 게 매우 힘든 길이었습니다. 지금은 다행히 그걸 극복하고 잘살고 있습니다.

    고난의 문제를 극복하고 행복한 인생을 살게 된 저 나름의 비결이 있습니다.

    첫째는 고난이 나만 겪는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목회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들 가운데 그 누구도 탄탄대로만 걷고 있는 이는 없었습니다. 누구나 자신만의 무거운 삶의 무게와 무거운 짐을 인생의 지게에 짊어지고 힘겹게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아하! 나만 홀로 힘든 건 아니로구나~” 이런 깨달음이 저에게 고난을 극복하는 힘이 되었지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