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는 고난을 통한 연대감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고난을 통해서 고난 겪는 이웃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고난은 이웃을 얻게 합니다. 자신이 당한 고난으로 우리는 고난 겪는 이웃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위로자가 됩니다. (고후 1: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그뿐인가요? 우리는 고난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얻습니다. 신앙 안에서 당하는 고난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 되고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고후 1:9)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셋째는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고난은 우리의 더 좋은 미래를 위해서 허락하시는 축복입니다. (롬 8: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십자가 후에 부활의 영광이 있듯이, 우리가 고난의 징검다리를 건너면 축복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소망을 견고히 하면 고난의 다리를 기쁨으로 건널 수 있습니다.

    위그노는 300년 동안 불같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생각하기도 끔찍할 정도의 고난이었지요. 하지만 그들은 견뎠고 승리했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이었을까요? 이 소망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그 소망을 견고하게 붙들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어디 위그노뿐이겠습니까? 성경에 나오는 모든 믿음의 위인들이 이 고난의 강을 건넜습니다. 아브라함도, 요셉도, 모세도 건넜습니다. 세례 요한도, 예수님도, 제자들도 건넜습니다. 고난의 의미를 깨달았기 때문에 그들은 기꺼이 기쁨으로 그 길을 걸었습니다.

    저는 인생이 힘겨울 때마다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이라는 시를 생각합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오늘도 주님이 예비하신 축복의 시간을 소망하며 고난의 징검다리를 즐거운 마음으로 우리 함께 힘차게 걸어가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