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전 4:12-13)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 하려고 오는 어려운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고난은 인생의 대 주제입니다. 그 누구도 고난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고난을 피할 수 없다면 잘 해석하고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그러면 고난의 진흙 속에 숨겨진 영롱한 진주가 보입니다. 사실보다 해석이 중요합니다. 인생은 팩트로 사는 게 아니라 해석으로 사는 겁니다.
    베드로는 극심한 박해와 고난을 경험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매를 맞고 풀려났고 옥에 갇혔다가 천사의 도움으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는 평생 고난과 죽음의 위협 속에 살다가 로마에서 순교했지요. 그런 그가 하는 말씀을 들으십시오.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라.’ 왜요? 고난은 우리를 단련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고난을 믿음으로 해석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불시험을 당했습니다. 불시험 프로시스는‘쇠를 녹여 버리는 풀무 불’입니다. 사람의 능력으로는 견디기 어려운 시험이지요. 하지만 그 불은 성도들의 믿음을 태워 없애지 못했고 오히려 그들의 신앙을 더 빛나게 만들었습니다. 불같은 시험과 고난은 옥석을 가려내는 과정입니다. 고난을 감당한 사람은 보석이 됩니다. 고난이 올 때 피하거나 타협하지 않고 용기를 내서 감당한다면, 당신도 보석이 될 수 있습니다.
    위그노는 고난의 풀무 불을 통과했습니다. 1534년 10월 17일에“대자보 사건”으로 분노한 프랑수아 1세는 개신교 박해를 시작했습니다. 과격한 개신교도들이 가톨릭교회의 예배인 미사를 비난하는 글이 파리와 인근 도시, 그리고 앙브와즈 성에 있는 왕의 침실 문 앞에 내 걸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아들 앙리 2세는 1551년에 ‘샤토브리앙 칙령’을 선포하면서 더 강하게 박해했습니다. 성경과 개신교 서적을 소유하거나 읽는 걸 금지하고, 종교개혁과 관련된 사람들을 잡아서 화형에 처했습니다. 그는 위그노가 화형을 당할 때 소리를 지르거나 찬양하는 일을 못 하도록 혀를 잘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