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그노도 오랜 세월 모진 고난의 터널을 통과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기꺼이 또는 어쩔 도리가 없어서 걸어갔을 겁니다. 그들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슬픔을 가득했을까요? 신세를 한탄하며 원망했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길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여정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남프랑스 광야 박물관 마지막 방에 개혁신앙을 가졌다는 이유로 붙잡혀 고문을 당한 후에 쇠사슬에 끌려가는 위그노의 모습을 그린 그림과 시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맨발로 수백 리 길을 걸은 후에 노예선에 들어가 노를 젓다가 죽게 됩니다. 그렇지만 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이시여, 저로 하여금 저를 묶고 있는 쇠고리를 혼인 반지로 보게 하시고 저를 끌고 가는 이 쇠사슬을 당신의 사랑의 사슬로 보게 하소서.’ 얼마나 감동적인지요.

    현대 교회는 십자가 없는 종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나를 위해서 예수께서 짊어지신 십자가는 사랑하지만 내가 감당해야 할 십자가는 애써 외면합니다. 예수의 고난으로 인한 은혜는 누리려고 하면서도 다른 이를 위한 작은 헌신도 부담스럽게 생각합니다. 신앙생활을 취미생활 정도로 하려고 합니다. 예수를 이용해 이 땅에서 잘 먹고 잘사는 것만을 좋아합니다. 십자가 신앙이 아니라 번영신앙 주위를 기웃거립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가치와 영광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우리 신앙의 현주소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기를 기뻐하는가? 아니면 부담스러워하고 부끄러워하는가?’


※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은 제가 마땅히 짊어져야 할 십자가를 즐거운 마음을 감당하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비록 고난의 길이라고 할지라도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영광스러운 자리임을 마음에 새기고 감사하며 걸어갈 수 있도록 용기와 힘을 더하여 주소서. 아멘


※ 노트

    H.W 롱펠로 / 싫고 괴로운 일도 정면에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아무리 고달파도 싸움에서 우는소리를 하거나 손을 드는 것은 금물이다. 아, 이런 세상에서 두려워 말라. 그러면 곧 알게 되리라. 고통을겪은 다음 강해지는 것이 얼마나 장엄한가를.


※ 한 줄 묵상

    성도의 고난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운명 공동체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