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면 큰 아들 은광이가 맞이하는 열세번째 생일이다. 임신 8개월 된 아내와 함께 프랑스에 들어와서 이 아이를 낳았으니, 기대반, 두려움 반으로 시작된 이국 생활이 어느새 13년이나 지난 것이다.

    은광이는 우리 가정이 지난 13년 동안 경험한 나그네 생활의 모든 희노애락을 함께 한 아이다. 서투른 해외생활 초년병에게는 즐거운 일보다는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더 많았었고, 이제야 여러가지로 안정되어 편안한 마음으로 삶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으니, 은광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우리가 겪은 그 모든 힘들었던 삶의 과정을 함께한 동반자인 셈이다. 목사의 아들이라는 타이틀로 인하여,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함으로, 한국과 프랑스의 이중 문화와 언어를 익히는 과정에서 받았을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미안하고 측은한 마음이 든다.

    5년 전의 일이다. 우리 세 식구가 한 상에 둘러 앉아 저녁 식사를 하는데, 은광이의 식탁 매너가 좋지 않기에 나무라게 되었다.
    - 은광아, 사내 자식이 음식투정하면 안 된다!
       사내 자식은 뭐든지 주는대로 먹어야 하는 거야!

    그때 은광이는 태도를 바꾸기는 커녕, 오히려 기분이 좋지 않은 표정을 하면서 강한 반론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 아빠, 나 사내자식 아니야! 나는 사내자식이 아니란 말이야!
    - 그럼, 넌 여자냐? 사내자식이 그런 소리하면 못써!

    하지만 은광이는 점점 더 자신의 입장을 주장하고, 울먹이기까지 하는 것이 아닌가!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감을 잡은 나는 그의 말을 자세히 들어보기 시작했다.
    _ 아빠, 나는 산에 자식이 아니란 말이야!
       난 산에서 태어나지 않았단 말이야!
       난 산에서 데려온 애가 아니란 말이야!

    내가 말한 사내자식이 은광에게서는 산에 자식으로 둔갑해 버린 것이다. 그는 사내자식과 산에 자식에 대한 개념 이해에서 헷갈리고 있었던 것이다.

    학교에서는 불어로, 집에서는 한국어로 생활을 하며 자라야 하는 우리네 자녀들은 자주 이런 혼란을 겪으며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외국에서 산다는 것이 어떤 이에게는 부러움의 조건이 되기도 하지만, 외국에서 자라는 당사자들은 힘겨운 일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아내는 이번 주 토요일에 간소한 생일파티를 열어 은광이 친구들을 초청한다고 한다. 아들의 기를 살려 주겠다는 심산인 모양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그들과 함께 있어 주어야 한다는 미션이 떨어졌다.
    의무감에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함께 하는 좋은 아버지 노릇을 한번 해 보아야겠다. 가정을 잘 가꾸는 것도 목회를 잘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니 말이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니라"(시 127: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