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행 4:19-20)
살아있는 물고기는 흐르는 물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죽은 물고기는 허연 배를 내놓고 떠내려가지요. 보기에도 흉하고 쓸모도 없습니다. 우리도 세상의 흐름과 압박의 물결을 거스르지 못하고 적당히 타협하고 그 물결에 자신을 맡겨서 살아간다면 우리는 생명력을 잃은 흉하고 쓸모없는 존재가 됩니다.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저항’이라고 합니다. 프랑스어 동사형으로는 레지스테, 명사형으로는 레지스탕스라고 하지요.
초대교회 사도들은 저항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위협하는 당국자들에 당당하게 맞섰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그들의 결기 어린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이것이 사도들과 초대교회의 생명력입니다. 개신교인들을 우리는 프로테스탄트라고 합니다. 저항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유럽 전체가 비진리와 불의 앞에 숨죽이고 있을 때, 마틴 루터는 그들에 맞섰습니다. 루터는 국가와 종교 권력에 의해서 보름스 의회에 소환되어 입장을 철회하라는 강요를 받을 때, 이렇게 외쳤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외쳤지요. ‘성경의 증거와 나의 명백한 이성에 비추어 나의 유죄가 증명되지 않는 이상 나는 교황과 공의회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겠습니다. 지금 내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철회할 수 없고 또 그럴 생각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양심에 반해서 행동하는 것은 안전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현명한 일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여, 이 몸을 도우소서, 내가 여기 있나이다. 아멘.’ 그의 저항은 역사의 흐름을 바꿔 놓았습니다.
위그노 마리 뒤랑은 남프랑스의 어느 위그노의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들의 집에서 위그노 예배가 드려졌다는 이유로, 그녀의 가족은 체포되었고 광야교회 목사였던 오빠 피에르 뒤랑은 몽펠리에 광장에서 공개 처형되었습니다. 마리 뒤랑도 체포되어 지중해 바닷가에 있는 에귀 모르트라는 성체의 La tour de constance, 전망대 감옥에 투옥되었지요. 그때 나이가 19살이었습니다. 그녀는 그곳에서 38년을 지냈습니다. 그녀도 연약한 인간이었기에 많은 고뇌와 유혹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는 감옥 중앙에 있는 물을 길어 올리는 구멍 주위에 프랑스 단어 하나를 새겨 놓고, 그것을 보라 보면서 자기 자신과 동료들의 흔들리는 마음을 붙들었습니다. 그 글자는 ‘레지스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