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빌 4:5
‘톨레랑스’는 프랑스어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단어입니다. 우리말로 ‘관용’입니다. 관용은 나와 타인의 의견이나 입장의 차이를 인정하고, 다름에 대한 너그러운 마음을 갖는 태도입니다. 다르다고 틀린 건 아닙니다. 둘 다 옳지만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서로의 차이를 너그럽게 인정해야 합니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은 오만입니다. 프랑스인들은 톨레랑스를 중요한 미덕으로 여깁니다. 오랜 세월 다른 것을 틀린 거라고 정죄하며 공격하고 다투는 아픔을 겪으면서 얻은 소중한 교훈입니다. 위그노는 종교적 관용이 없는 로마 가톨릭과 프랑스 왕국에 의해 오랜 기간 탄압과 박해를 받았습니다. 위그노의 신앙이 틀린 게 아닙니다. 그들과 달랐을 뿐입니다. 그 차이를 인정하는 관용이 있었다면 그 오랜 시간 프랑스 땅을 종교전쟁과 순교의 피로 물들게 하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톨레랑스는 지금 우리에게도 중요한 가치입니다. 톨레랑스는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서 더불어 조화롭게 살아가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관용이 없는 사회는 갈등과 다툼으로 사막같이 메마르게 됩니다. 관용은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이 함께 사는 사회에서 꼭 필요합니다. 타 종교를 거세게 비난한다고 믿음이 좋은 게 아닙니다. 그런 이들은 오히려 영적 내공이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진리이며 우월하다는 사실을 타협 없이 그러나 점잖게 보여 줄 때, 비신자들이나 다른 종교인들도 우리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관용은 그리스도인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교회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반드시 지녀야 할 중요한 덕목입니다. 초대교회부터 지금까지 교회 안에는 갈등과 다툼이 존재했습니다. 차이를 너그럽게 인정하지 않고 틀림으로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빌립보 성도들에게 관용을 권면했습니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빌 4:5)
관용이라는 단어는 신구약 성경에 23번 언급됩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겠지요. 관용의 헬라어 ‘에피에이케스’는 ‘선하다’ 혹은 ‘부드럽다’라는 뜻입니다. 타인을 ‘선한 의도를 가지고 부드럽게’ 대하는 것을 말합니다. 관용은 온유한 성품에서 나옵니다. 온유한 성품이 타인에 대해 발현되는 것이 관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