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 갈 5:13
하나님은 생명과 동시에 자유를 주셨습니다. 자유는 생명만큼이나 소중합니다. 우리는 자유를 위해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단테는 인류 최고의 상태는 자유를 크게 누리고 있을 때라고 했습니다. 인류의 비극은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잃어버린 겁니다. 자유는 생명을 걸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것을 되찾기 위해서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대한민국에서 누리는 자유는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뤄졌습니다. 일제 강점기엔 독립지사들의 희생이 있었고, 한국 전쟁에서는 공산당의 침략을 막기 위해 수많은 병사들이 피를 흘렸으며 독재 정권하에서는 자유를 쟁취하려 꽃다운 청춘들이 고문과 투옥을 무릅쓰고 투쟁했습니다.
위그노의 역사는 자유를 위한 투쟁의 여정이었습니다. 그들은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얻기 위해 300여 년의 긴 박해의 터널을 처절하게 통과해야 했습니다. 그사이에 수많은 생명이 희생되었습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에서 자유와 박애, 평등이 선언되었습니다. 그러나 자유는 선언만으로 얻을 수 없습니다. 프랑스 땅에 자유로운 세상이 도래한 것은 그것을 위해 수많은 프랑스인들이 피를 흘린 이후였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희생하심으로 얻어진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말미암아 우리는 죄와 사망, 율법과 심판으로부터 자유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자유는 세상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값진 보물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신앙과 예배의 자유를 얻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종교개혁은 부패로 변질된 중세 교회의 가르침과 형식화된 미사를 거부하고 성경의 가르침과 예배를 선택한 사건입니다. 1521년 4월 18일, 루터는 황제와 교회 권력자들이 모인 보름스 국회에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성경의 증거와 명백한 이성의 증거에 의해서 나 자신이 설득되지 않는 한, 나는 더는 교황과 교회 회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겠습니다. 이들은 오류를 범해왔고 서로 엇갈린 주장을 펴왔습니다. 내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철회할 수 없고 또 그럴 생각도 없습니다.” 이 일로 루터는 파문되었고 갖은 고초를 겪었지만 결코 후퇴하지 않았습니다. 이 자유를 얻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바쳤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신앙과 양심의 자유는 예수님과 수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흘린 피의 대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