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얻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신 8:2)
광야를 지난다고 모두가 불행한 건 아닙니다. 광야 길에서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습니다. 광야의 의미를 안다면 말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그곳에 두신 이유를 깨달으면 거친 광야에서도 휘파람을 부르며 걸어갈 수 있습니다. 광야는 목적이 아니라 과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는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 광야만 바라보면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그러나 가나안을 바라보면 감사할 수 있습니다. 광야에서 끝난다면 불행하지만, 가나안이 있기에 행복할 수 있습니다. “용기를 내라. 오늘은 광야에서 걷지만, 내일은 약속의 땅에서 걸을 것이다”라고 말한 D.L. 무디의 말처럼, 내일의 약속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오늘의 광야를 기쁨으로 걸을 수 있는 용기가 생겨납니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도 거친 광야를 걸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광야였지만 절망하거나 불행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광야 너머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감옥에서도 찬송하며 기도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잠시 받는 고난이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될 수 없다는 것을 굳게 믿었기에 고난 속에서도 감사하고 찬송할 수 있었습니다. 광야는 인생의 순도를 높이는 시간입니다. 광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에 합당한 백성으로 만드는 제련소와 같았습니다.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신 8:2) 광야라는 제련소를 거치며 그들의 순도는 높아졌습니다. 위그노는 300년 넘게 고난과 박해라는 거칠고 메마른 광야를 걸어가야 했습니다. 1572년 성 바돌로매 대학살로 수많은 위그노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고국 땅을 등지고 낯선 나라로 망명한 위그노들도 부지기수였습니다. 1685년 루이 14세의 낭트칙령 폐지로 ‘개종 아니면 죽음’의 극한 상황으로 내몰렸고, 20만 명의 위그노들이 프랑스 땅을 떠나 디아스포라가 되었습니다. 남은 이들은 남부 프랑스 세벤느 지역으로 숨어 들어가 102년 동안 광야 생활을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고난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은 광야 여정과 동일시하며 견뎌 나갔습니다. 위그노들은 광야에서도 철저한 예배자로 살았습니다. 이동식 강대상과 성찬 용기를 제작해 가지고 다니면서까지 광야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교회 사가들은 그 시기를 ‘광야교회의 시대’라고 부릅니다.
광야는 하나님의 음성만이 들리는 장소입니다. 히브리어로 광야는 ‘미드바르’이고 말씀은 ‘다바르’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명료하게 들립니다. 편안할 때엔 수많은 것들과 소리로 우리의 눈과 귀가 막힙니다. 그러나 광야에서는 막힌 귀가 뚫리고 어두운 눈이 밝아집니다. “고난 겪은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