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다. 나는 60년을 살면서 인생은 고된 길임을 깨닫는다. 한자에서 생(生)은 소(牛)가 외줄을 타는 모습이다. 소가 외줄을 타는 일이니 얼마나 힘들고 조마조마한가? 누구나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순간마다 다가오는 위기를 감당하며 견디고 버티며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힘써 살아내야 한다. 부당해도 살아내야 하고, 부조리해도 살아내야 하고, 억울해도 살아내야 하고, 고단해도 살아내야 한다. 생명(生命)은 살아내라(生)는 명령(命)이다. 모든 인생은 비록 산다는 게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도 힘써 살아내라는 하늘의 준엄한 명령을 받고 이 땅에 태어났다. 
    예수님은 영원한 죽음을 향해 소망 없이 힘겹게 걸어가고 있는 인생에 영원한 생명을 풍성하게 주시려고 오셨다. (요 10:10)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님에게 잇대어 사는 자는영원한 생명을 맛보게 된다. 불가에서는 영원을 10의 68제곱에 해당하는 무량대수라고 한다. 영생은 무량대수를 훨씬 넘어서는 영원하고 풍성한 삶이다.
    이 영원한 생명을 맛본 우리 그리스도인은 나도 살고 세상도 살리는 걸 사명으로 받은 자들이다. 내가 먼저 영생을 맛보고 그것을 흘려보내야 한다. 영생을 흘려보내려면 내가 깨져야만 한다. 빛이 깨져야 풍성한 작품이 되듯이 내가 깨지고 부서져야 영생이 이웃과 세상으로 흘러간다. 그 일을 지금 여기서 나부터 시작해보자. 우리의 작은 몸짓이 이웃과 세상을 살리는 그날이 올 때까지.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느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 피고 나도 꽃 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느냐고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조동화의 시)

여러분을 섬기는 종
성 원 용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