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百) 천만(千萬) 만만(萬萬) 억(億)겹
찬란한 빛살이 어깨에 내립니다.

자꾸 더 나의 위에
압도(壓倒)하여 주십시요.

이리도 새도 없고,
나무도 꽃도 없고,
쨍 쨍, 영겁(永劫)을 볕만 쬐는 나 혼자의 광야(曠野)에
온 몸을 벌거벗고
바위처럼 꿇어,
귀, 눈, 살, 터럭,
온 심혼(心魂), 전(全) 영(靈)이
너무도 뜨겁게 당신에게 닳습니다.
너무도 당신은 가차이 오십니다.

눈물이 더욱 더 맑게 하여 주십시요.
땀방울이 더욱 더 진하게 해 주십시요.
핏방울이 더욱도 곱게 하여 주십시요.

타오르는 목을 축여 물을 주시고,
피 흘린 상처(傷處)마다 만져 주시고,
기진한 숨을 다시
불어 넣어 주시는,

당신은 나의 힘.
당신은 나의 주(主).
당신은 나의 생명(生命).
당신은 나의 모두.……

스스로 버리려는
벌레 같은 이,
나 하나 끓은 것을 아셨습니까.
뙤약볕에 기진(氣盡)한
나 홀로의 핏덩이를 보셨습니까.

박두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