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집엔
금그릇 은그릇이 있고
나무그릇 질그릇 다 있다셨네.

나는 그 중에 뭐 되어 곱게 뵈나?
금그릇이야 어림있나
은그릇도 될 수 없어
나무그릇 그거 돼도 잠도 안 오겠다만
윤도 없는 질그릇 그런거나 되었으면.

성령의 오짓물 입혀지면 더 좋겠네.
그래서 그 왜 그런거 있지
갓이 큰 어르신네 상에서도
제 실 참 잘 해낸 조선의 뚝배기
더도 말고 그저 그런거나 되었으면.

아니지, 뚝배기는 이 빠지면 개밥그릇
금이 가도 테 메우면 새로 쓰이는
큼직한 독 그러거나 되었으면.
믿음도 담고 소망도 담고
사랑도 아구까지 차게 담아 갈릴리 가나의 돌항아리 여섯처럼
주인에게 곱게 뵈어 귀히 쓰이는
질그릇 그저 그런거나 되었으면.


권숙월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