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심원한 역설이다. 무한하신 하나님이 유한한 인간의 몸을 입는 사건, 곧 영원이 시간 속으로 진입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 1:14)라고 했다. 베들레헴의 구유는 이 역설이 구체화된 자리이며, 창조주가 피조물의 조건 속에 거한 장면이다. 이는 하나님의 위대함이 축소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기비움이다.
무한하신 예수님이 유한을 입음으로써, 유한이 무한에 참여하는 길을 내셨다. 그리하여 주님은 죄로 인해 단절된 인간과 하나님 사이를 잇는 중보자(딤전 2:5)가 되셨고, 인간을 하나님께로 연결하는 다리가 되셨다. 우리의 구원은 단지 용서의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벧후 1:4)로의 부르심이다. 고대 교부들은 이것을 신화(神化, theosis)라고 했다. 이는 인간의 신격화가 아니라, 은혜를 통해 하나님의 거룩과 영광에 참여한다는 뜻이다.
이 진리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놀라운 의미를 제공한다. 첫째, 사람의 유한함은 더 이상 약점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영원에 참여하는 기회이다. 둘째, 시간 속에 존재하는 사람은 영원을 지향하는 삶으로 초대되었다. 셋째, 그리스도의 내주(골 1:27)는 우리의 삶을 성육신의 증언자로 전환시켰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존재로 살아야 한다.
따라서 성탄은 과거의 기억을 넘어, “놀라운 교환”의 기적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를 묵상하며, 하나님이 여전히 우리의 유한함 속으로 들어오며, 우리를 그의 무한하심에 참여시키고 계심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벧후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