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불수교 140주년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이 조약을 양국 관계사로 축소할 것이 아니라 16세기 프랑스 광야에서 시작된 위그노의 신앙이 마침내 극동의 한반도에서 꽃으로 만발하게 된 미시오 데이(Missio Dei)의 서사로 읽어내야 한다.
    위그노는 칼뱅의 개혁주의 전통을 계승한 프랑스 개신교 성도들이었다. 1572년 성 바돌로매 축일의 대학살, 1685년 낭트칙령 폐지로 발생한 대 박해 속에서도 그들은 신앙의 정절을 지켰다. 그들이 세벤느(Cévennes)의 동굴과 협곡에서 세운 ‘광야 교회(L’Église du Désert)’는 ‘말씀과 양심’ 위에 세워진 교회였다. 투르 드 콩스탕스 감옥의 돌바닥에 새겨진 ‘RÉSISTER’(저항하라)는 위그노 신앙의 정수였다. 그들은 불의한 권력 앞에서 무릎 꿇지 않는 ‘저항의 신앙’과 일상의 노동과 가정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실현하는 ‘생활의 신앙’을 보여 주었다. 그들은 복음의 씨앗을 품고 나그네가 된 ‘순례의 신앙’으로 유럽과 남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에서 문명의 변혁을 이루어 냈다. 그들의 경건주의와 개혁주의 신앙은 18~19세기 영미 부흥운동의 토양이 되었고 이 토양에서 자라난 북미 선교사들이 마침내 1884년 한반도에 발을 디뎠다. 따라서 한불수교 140주년은 바로 이 ‘열매’가 ‘나무’와 다시 만나는 섭리적 시간이다.

(다음 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