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피어슨(Paul E. Pierson)은 기독교 선교 역사의 전개 과정 분석에서 복음의 창의적 확산은 언제나 사회•문화적 중심부(Center)가 아니라 변두리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변두리 이론(Periphery Theory) 을 제시했다. 그는 초기 교회에서부터 근대 선교에 이르기까지 복음 전파의 주요 동력이 제국의 권력 중심이나 제도 교회가 아니라 주변화된 소수 집단에서 나타났음을 지적했다. 이러한 분석은 단순한 역사적 관찰을 넘어 선교학적 패러다임 전환을 촉진하는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초대교회의 성장은 로마 제국의 권력 중심부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 여성, 노예, 소수민족 등 주변화된 집단 속에서 일어났다. 로드니 스타크 (Rodney Stark)는 기독교가 제국적 지배 계층이 아닌 변두리 집단의 연대와 돌봄 실천을 통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고 분석한다.
중세 수도원 운동 또한 제도 교회와 정치 권력의 중심부에서 벗어난 영적 변두리에서 일어난 영적 갱신 운동이었다. 중세 수도원 운동은 제도 교회와 정치 권력의 중심부에서 벗어난 영적 변두리에서 등장하여, 교회의 영적 갱신과 선교적 활력을 불러일으켰다. 베네딕트 수도회, 클뤼니 개혁(Cluniac Reform), 시토회(Cistericians), 프란체스코 수도회와 도미니코 수도회는 당시 제도화된 교회가 놓쳤던 경건, 청빈, 공동체적 삶을 회복하며 서구 기독교의 영성을 새롭게 재구성했다. 이러한 수도원 운동은 후대 개혁 운동과 선교 신학에까지 영향을 미쳤으며 변두리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선교적 역설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로 평가된다.
마찬가지로 종교개혁도 단순히 16세기 유럽 교회의 제도적 부패에 대한 일시적 반응이 아니라 사회적 주변부에서 발생한 신학적 저항과 신앙 공동체의 갱신 운동이 제도 교회의 중심을 뒤흔든 사건이었다. 루터, 츠빙글리, 칼뱅과 같은 개혁자들은 모두 제도 교회 권력 구조의 중심부에서 소외되거나 정치, 교권 질서에 저항하는 위치에서 출발했다. 루터는 비텐베르크라는 변방에 있는 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치던 신학자로 당시 로마 교황청과 교권 중심부가 장악한 신학적 주류와는 거리를 두고 있었다. 칼뱅 또한 제네바라는 도시 국가의 망명 공동체 속에서 종교개혁을 전개했으며 츠빙글리 역시 취리히라는 지방 도시에서 성경적 개혁을 추진했다. 이러한 주변부적 맥락은 종교개혁이 단순한 제도 개혁이 아니라 ‘변두리에서 시작된 영적 저항’이었음을 보여준다.
「미셔널 위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