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방콕 포럼에서 만난 중국 선교사님에게 물었다. “중국에서 살아
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의 한 마디 대답. “관계입니다.”
관계를 중국말로 “시(?系)”라고 한다. 이 시는 만남을 통해서 시작
되어 깊어진다. “한 번 만나면 서먹하고, 두 번 만나면 마음을 열고, 세 번
만나면 친구가 된다.”는 속담도 있다. 관계의 꽃은 친구가 되는 것이다. 이
친구 관계는 반복적이고 신실한 만남을 통해서 서서히 이루어지게 된다.
이런 중국인들은 친구를 표현하는 다양한 표현들을 발전시켰다.
- 수어지교(水魚之交) / 물과 물고기처럼 친밀한 벗
- 막역지우(莫逆之友) / 배반 없이 생사를 함께 할 수 있는 허물없는 벗
- 금란지교(金蘭之交) / 금이나 난초처럼 귀하고 향기로운 벗
- 관포지교(管鮑之交) / 춘추전국시대 관중과 포숙아처럼 친하고 다정한 벗
- 죽마고우(竹馬故友) / 대마를 타고 놀던 어린 시절의 벗
- 문경지교(刎頸之交) / 목숨을 내 주어도 좋을 정도의 친한 벗
- 지란지교(芝蘭之交) / 지초와 난초처럼 향기로운 벗
- 포의지교(布衣之交) / 신분, 지위를 떠난 순수한 벗
- 지기지우(知己之友) / 마음이 잘 통하는 벗
현대인들은 손익계산과 감정을 따라 관계를 쉽게 저버린다. 진정한 친구가
없다. 있어도 일시적이고 피상적인 관계일 뿐이다. 그래서 현대인의 내면은
고독하고 메마르고 점점 삭막해진다.
향기롭고, 마음을 나눌 수 있고 순수하고 배반하지 않고 목숨을 내어 줄 수
있고 다정하고 친밀한, 그런 친구가 그립다. “날씨가 차가워지고 난 후에야
소나무의 푸르름을 알게 된다.”는 논어의 한 구절처럼, 그런 친구는 없을까?
나는 그런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요즘처럼 날씨가 멜랑콜리하고 스산해지는
날이면 이런 저런 생각이 들어온다.
그러다가 문득 깨닫는다. “내게도 이런 것 다 가진 친구가 내게도 있구나!”
(요 15:13-14)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여러분을 섬기는 종 성원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