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목회를 잘 하시는 선배 목사님 가운데 모든 관계를 형님과 아우로 규정하는 분이 계시다. 그 교회 부목사들은 다 그의 아우들이다. 가끔 전화를 드리면 “아우, 반갑네!”라고 하신다. 나는 형님과 누이가 없는지라 그런 표현에 당혹스러우면서도 형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내심좋다.
피도 한 방울 섞이지 사람들끼리 이렇게 쉽게 형님 아우가 되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필요이상으로 끈끈하게 얽혀서 피곤한 관계를 경험하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를 위해서 희생까지 하는 혈맹을 경험하기도 한다. 참 재미있는 관계 중심의 문화이다.
한국교회에서는 집사 권사 장로라는 칭호이외에 사용할 용어가 마땅하지 않을 때 우리는 “형제님, 자매님”이라고 부른다. 이것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생각된다. 나는 이런 칭호보다 기왕에 “형님 아우”가 더 좋다고 본다. 약간 건달 냄새가 나기는 하지만 말이다.
성경에도 예수님을 우리의 큰 형님이라고 칭했다. (롬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은 우리의 큰 형님이 되시고 우리는 그의 아우들이 된다는 것이다.
금년에 새로 나온 “친구 2” 라는 영화에 이런 대화가 있다.
- 형님 아우라는 관계가 왜 생기는지 너는 아나?
- 잘 모릅니다.
- 돈만 준다고 되나?
-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같이 밥 먹고, 같이 배고프고, 같이 고생하고, 같이 도망 다니고, 같이 울고 웃기 때문이다.
- 아 예 알겠습니다. 형님!
건달들의 말에 일리가 있다. 형님과 아우의 관계는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쌓여가는 것이다. 교회는 예수님을 큰 형님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형님 아우 공동체이다. 주님이 성육신하셔서 우리와 함께 동고동락하셨듯이 우리도 주님과 동고동락하고 성도들과 동고동락하면서 형님과 아우가 되가는 공동체이다.
2014년에는 우리 교회가 큰 형님 되신 예수님을 모시고 모든 교인들이 그의 아우가 되어 서로 우애하고 서로의 짐을 함께 지며 삶을 함께 나누는 “형님 아우 공동체”가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