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일 저녁에 우리 부부는 로베르트 알라냐의 콘서트에 초청을 받았다. 파리에 온지 10년이 되었지만 두 아이를 키우느라고 부부가 함께 콘서트에 가는 일이 거의 없어서인지 대단히 색다른 기분이었다.
    알라냐는 40세의 나이로 세계에서 가장 잘 하는 테너라는 정도의 예비지식을 가지고 참석했으나 노래가 한곡 두곡 진행되면서 나는 마음을 알라냐에게 빼앗기고 있었다. 그것은 나 뿐만은 아니었나보다. 노래가 다 마쳤지만 우리 모두는 앵콜을 외쳤고 다섯 곡이나 앵콜 곡을 불렀지만 청중들은 자리를 뜨지 못하고 환호했다. 참 감동적인 밤이었다. 목회현장에서 이런 저런 복잡한 생각과 마음을 한번 털어내는 순간이기도 했다.
    로베르트 알라냐는 프랑스에서 태어나 자란 이태리 성악가이다. 그의 노래속에는 매력적인 특징들이 있었다. 우선 그는 듣기에 부담없는 편안한 목소리와 발성으로 노래를 불렀다.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탁월하다는 진리를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둘째 무대를 마치 자기 안방처럼 마음껏 활용하고 있었으며 청중을 배려하는 매너가 몸에서 묻어나는 모습이 돋보였다. 셋째 그는 호소력있게 노래를 불렀다. 소리만이 아닌 그의 감정과 혼이 전달되는 것을 느끼게 만들었다.
    이런 특징과 매력이 어디서 나왔을까? 그의 성장과정이 알라냐를 그런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본다. 알라냐는 가난하고 이름없는 음악가로 피자집에서 일하면서 노래하는 사람이었다.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로서 일할 수 있는 능력과 리더십을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 생활을 하면서 감옥에서 죄수의 신분으로 일하면서 익히고 갖추었던 것 처럼, 알라냐는 그런 밑바닥 생활을 성실하게 하면서 이토록 큰 무대에서 세계최고의 테너로서 마치 자기 안방처럼 연주할 수 있는  저력을 길렀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생활에 충실하다가 어느 재력있는 후원자에게 발견되었고, 그의 도움으로 정상에 오른것이다. 그는 피자집에서 발견된 진주라고나 할까!
    우리는 밑바닥 생활, 고난과 역경의 터널을 애써 피하면서 정상만을 꿈꾼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정상에 오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혹시 그곳에 올랐을지라도 그의 역할이 감동을 주지는 못한다. 작은 일일지라도 그 일에 충성하고, 작고 초라한 무대일지라도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해서 거기 있는 몇 사람을 감동시킨 사람이 큰 일에서, 큰 무대에서 모든 사람을 감동시키는 법이다.

    나도 목사로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큰 일, 큰 역할을 꿈꾼다.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목회자, 설교가가 되고 싶은 열망이 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그러면서도 작은 일, 작은 역할을 놓고 그 일에 충실할 때 큰 일, 큰 역할도 할 수 있다는 이 평범한 이치를 잊을 때가 있다. 얼마나 어리석고 공허한 일인지....
    이제는 개척교회 목사에게 주어진 이 일들과 직분이 얼마나 중요하고 과분한지를 명심하고 옷깃을 여미고 성실하게 달려가야 하겠다. 작은 일에 충성한 종에게 큰 일을 맡기시는 우리 주님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말이다.
    
    주여, 작은 일에 충성하는 신실한 종으로 살도록 인도해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