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324일 파리 샤를르 드골 공항에 도착했고, 선임 선교사님과 청년들이 기쁘게 반겨 주었다. 나는 언어 연수나 현지 적응을 위한 시간 없이 곧 바로 청년부를 비롯한 교회 일에 투입되었다. 동생의 일로 인해서 힘든 시간도 있었으나 사역은 늘 즐겁고 행복하고 은혜로운 시간이었다.


  이렇게 1년의 시간이 지났을 때 선임 선교사님께서 나를 불러서 본인은 한인교회 목회하시고 나는 프랑스 선교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그리하겠노라고 대답하고 곧바로 프랑스 선교를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막상 프랑스 선교를 준비하려고 하니 넘어야할 산들이 앞에 겹겹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첫째가 프랑스가 선교지인가?”에 대한 고민이었고, 이것은 곧바로 나는 선교사인가?”라는 정체성 문제로 이어졌다. 둘째는 선교의 대상인 프랑스인들과 그들의 입장이었다. 오랜 기독교 역사, 찬란한 예술과 문화를 자랑하는 그들이 동방의 작은 나라에서 온 동양인에게 마음을 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셋째로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유럽과 프랑스를 선교지로 인정하느냐의 문제였다. 실제로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럽과 프랑스에서 귀한 사역을 하고 계십니다.”라는 말보다는 참 좋은 곳에 계시네요. 복도 많으시네요. 이런 곳에 사시다니... 언제 한번 구경 가도 될까요?”라는 말들이었다. 넷째로 비싼 생활비가 문제였다. 프랑스에 사는 사람치고 이 문제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 내가 가장 오랫동안 고민한 것은 첫 번째 선교지와 선교사 정체성의 문제였다. “프랑스가 선교지인가? 나는 선교사인가?” 


 그런데 불어를 공부하고 이 지역을 연구하고 사역을 하면서 참으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여기가 선교지이며, 게다가 이곳이 21세기 하나님의 선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전략적 선교지라는 사실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이들은 바로 이곳에 있는 디아스포라 한인교회와 한인 그리스도인들이라는 사실이었다

이런 깨달음과 확신은 내 가슴에 불을 질렀으며, 프랑스 선교에 대한 구체적이고 장기적인 사역을 계획을 하도록 만들었다.


프랑스가 어떤 나라인가?

프랑스는 이미 복음화를 경험했고 기독교의 위대한 유산을 소유한 나라이다. 고대 교부 이레네우스(Irenaeus-주후 212)가 리용(Lyon)의 주교로 있다가 순교하였고, 지금의 몽마르트 언덕의 주인공인 파리 최초의 주교 생 드니(Saint Denis-주후 250년 경)의 순교의 피를 흘렸고, 16세기에는 장 깔뱅(Jean Calvin)을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을 배출했고, 변질된 가톨릭 신앙에 맞선 위그노들의 저항과 순교가 있었던 나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