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 온지 19년째가 되었다. 30대 초반에 왔는데 어느새 지천명의 언덕인 50살을 넘기고 말았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뭐 하나 제대로 이룬 것이 없이 나이만 먹은 것 같아 부끄러울 뿐이다.

 

  지난 19년 동안 프랑스에서 살고 사역을 하면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이 있다면 기다림과 여유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여유를 가지게 되며, 하나님의 일은 믿음으로 기다리면 되고, 또한 하나님의 때까지는 기다려야만 한다는 것이다.


  헤밍웨이가 그의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당신이 젊은 시절에 파리에서 살아보게 될 행운을 충분히 가졌다면, 파리는 이동하는 축제처럼 당신의 남은 일생 동안 당신이 어디를 가든 당신과 함께 머무를 것이다.”


  나는 이런 역사와 낭만과 예술의 도시 파리에서 멋지게 사역해 보겠다는 부푼 꿈과 설래 이는 마음은 이곳에 도착해서 이국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시차가 극복되면서부터 그 꿈은 산산이 깨지기 시작했다.

 

  역사와 예술이 어우러진 멋진 도시를 보면서 걷다보면 발밑에 물컹하고 밟히는 것이 있었다. 개똥인 것이다. 파리는 어디를 가나 개똥밭이었다. 가꾸어진 잔디밭은 개똥이 매설된 지뢰밭이었다. 나는 개똥을 밟지 않기 위해서 땅을 보고 다니느라고 주위를 감상하며 걸을 여유를 잃어 버렸다. 축제는 무슨... 개똥 스트레스뿐인 걸...


     체류증을 하러 경시청에 갔다. 새벽부터 줄을 서서 겨우 번호표를 받아 창구에 갔지만 이런 저런 이유를 붙여 돌려보낸다. 몇 번에 걸쳐서 체류증을 겨우 발급 받으면 금방 재발급 시기가 돌아온다. 그렇게 17년을 보냈고 지난해에 드디어 10년 장기체류를 받았다. 17년 만에 겨우 안정적인 체류허가를 받은 장기체류증을 받아 들고 마치 대학합격증을 받은 것처럼 기뻐했다. 참으로 오랜 기다림으로 얻은 기쁨이었다


유럽 사회가 대부분 그렇지만 특히 프랑스라는 나라는 변화가 거의 없는 나라이다. 20년 전에 있던 말뚝이 지금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고 앞으로 100 후에도 그곳에 그대로 있을 것이 예견되는 나라이다. 프랑스는 모든 것이 느리다. 오직 벌금과 세금 청구서만이 빨리 날라 온다. 나머지는 모두 느리다. 이런 사회에서 무슨 변화를 시도한다는 것은 무모하기까지 하다. 차라리 그 분위에 순응하는 편이 훨씬 속편한 세상이다.